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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우리 것을 내 줄 수 없다 | 그 외 경제적 구국 운동 • 방곡령 1920년대에 접어들자 일제는 자국의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곡물을 대량으로 수입해갔다. 그러자 우리나라의 곡물 가격은 폭등하였고 흉년까지 겹쳐 농촌은 더욱 피폐해졌다. 이 에 함경도·황해도 등의 지방관들은 곡식 수출을 금하는 방곡령을 내렸다. • 상권 수호 운동 개항이후 중국과 일본 상인들의 상권 침탈은 날이 갈수록 극심해졌다. 중국과 일본 상인에 상권을 빼앗긴 수천 명의 서울 상인들은 우리의 상권을 지키기 위하여 시민들과 합세하여 외국 상점들이 서 울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며 상권 수호 운동을 벌였다. • 이권 수호 운동 제국주의 열강은 앞 다투어 우리나라의 이권을 빼앗아갔다. 이에 우리 민족은 독립협회를 중심으 로 다양한 이권 수호 운동을 펼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우리나라 화폐 발행권과 국고 출납권 등 각종 이권을 획득하기 위하여 러시아가 서울에 설립한 한·러 은행을 폐쇄시켰으며 프랑스의 광 산채굴지 확정 요구와 러시아의 석탄 저장고 부지 요구를 좌절시키고 군사기지 설치를 위하여 목포 부근의 섬을 팔라는 러시아의 요구도 무산시켰다. 이 밖에도 독일과 미국이 차지한 각종 이권도 반 대하였다. • 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 일제는 토지를 약탈하기 위하여 황무지를 개간 한다는 핑계로 황무지 개간권을 강제로 요구해왔 다. 이에 보안회라는 단체가 조직되어 황무지 개간 반대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에 전 국민이 나서서 호응하고 일부 민간 실업인과 관리들이 황무지를 우리 손으로 개간하기 위하여 농광 회사를 설립하 자 일제는 결국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철회하였다. 일제가 토지 약탈을 목적으로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해오자 이를 반대하 는 항일운동이 전개되었다. 관련 논설이 1904년 6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