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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1920년대 초반 서간도지역 독립운동 단체와 대한통의부의 국내 진공 31 다. 그런데 광한단과 광복군총영은 관전현을 전진 기지이자 거점으로 삼고 국내 진공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단의 근거지 재건 활동을 토대로 광한단 과 광복군총영의 국내 진공이 추진되며 단체 간의 연대가 이뤄졌다. 이러한 양상은 서간도 내 집안현(輯安縣)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대한독립단이 집안현에서 친 일단체를 파괴하는 등 근거지 재건 활동을 전개하 였다. 그 때, 광한단은 단원 100여 명을 집안현에 주 둔시키고 단원 5∼6명으로 1개 조를 편성해 국내로 잠입시켰다. 대한독립단이 서간도에서 근거지 재건 에 성공해 국내 진공의 거점이 마련되면 광한단과 광복군총영이 이에 기반해 국내 진공을 전개하는 형 태로 연대가 이뤄졌다. 서간도지역 독립운동은 1921년 3월경 근거지 재 건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에 서간도의 여러 독립 운동단체가 1921년 봄 이후로 점차 ‘무장을 정비’했 을 뿐만 아니라, 광복군총영이 1921년 3월 1일 3·1 운동 기념대회를 개최하였다. 광복군총영이 주최한 3·1운동 기념대회에서는 3·1운동 이후의 경과, ‘금후 (今後)의 각오(覺悟)’ 등의 주제로 연설회도 열렸다. 그 결실로 1921년 말경 서간도의 독립운동 근거지 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는 서간도지역 독립운동단 체가 통합의 준비를 마쳤음을 의미했다. 대한통의부의 국내 진공과 한인 자치 1921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단체 통합이 논의 되었다. 12월 20일 서간도만의 ‘군사통일회’가 열렸 고, 1922년 1월경 서로군정서·대한독립단·광한단·광 복군총영 등 8개 단체가 참가한 통합 회의가 열렸다. 광복군총영 본부가 있었던 중국 요녕성 관전현 소고산촌(小狐山村, 독립기념관 제공) 간 도 지 역 의 ‘ 경 신 참 변 ’ 소 식 을 보 도 한 『 독 립 신 문 』 기 사 (1920.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