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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1운동 이후 급진론 · 완진론, 외교독립론, 주전론 · 실력양성론 등   독립운동 방법론 논쟁 대한민국임시정부, 1920년 ‘독립전쟁의 원년’ 선포 국민개병, 칠가살 처단 등 무력투쟁 적극 전개 이상룡, 전통 유가에서 사회계약론 수용 등 인식 변화  임시정부 국무령 맡아 독립운동 노선 통합 추진 나철, ‘국망도존’, ‘단군구국론’ 바탕 총체적 항일투쟁 전개 신채호, 군사행동으로 자결능력 입증 후 국제사회 배경  일제 구축 목표 1919년 3 · 1운동 직후 독립운동은 파리강화회의와 국제연맹에서의 외교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독립선언, 만세시위운동, 외교와 선전활 동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1919년 가을 상하이에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하면서 외교와 선전활동에 치중되었던 평화적 운동 방식이 점차 독립전쟁론으로 바뀌어갔다. 독립전쟁론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은 서 · 북간도와 러시아지역의 무장투쟁론을 반영하던 이동 휘의 임시정부 참여, 미국과 일본의 갈등에 근거한 미일전쟁설의 확산, 러시아혁명세력의 득세에 따른 사회주의 이념의 확산과 러일전쟁   발발에 대한 기대감을 배경으로 하였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원년’, ‘최후혈전의 해’로 선포하게 되었고, 모든 활 동을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와 독립전쟁의 개시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에 이상룡과 나철, 임시정부, 그리고 신채호의 현실인식과 대응, 독립운동 방략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Theme 1. 석주 이상룡의 현실인식과 독립운동 방략의 변화・김순석 Theme 2. 대종교 지도자 홍암 나철의 현실 인식과 대응・김동환 Theme 3. 1920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전쟁의 해’를 선포하다・김은지 Theme 4. 제1차 세계대전 전후처리 기간(1919~1923년)                  신채호의 민족자결주의 이해와 독립운동론 적용・서일수 광복 제79주년 기획 특집 ‘한국 독립운동 세력의 현실 인식과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