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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충남지역 후기의병의 봉기와 일제의 탄압 31 1907~1909년 후기의병기 충남지역 에서의 의병전쟁은 홍주권은 물론 공 주, 아산권 등 거의 전 지역에 걸쳐 전 개되었다. 특히 당진 · 서산 · 홍성 · 예 산 · 보령 · 청양 · 서천 등 홍주권은 후기 의병기 주요한 의병 활동지였다. 이 지역은 또한 1896년과 1906년 홍주 의병의 활동무대이기도 하였다. 이 중에서 당진 · 서산지역에서 활동한 정주원 의병, 당진 소난지도에서 격 전을 벌인 홍원식 의병이 돋보인다. 일제는 경찰과 헌병은 물론, 정규군 인 수비대까지 배치하여 의병을 탄압 하였다. 충남지역 의병 탄압을 맡은 부대는 일본군 보병 제14연대였다. 이들의 통계에 따르면 1907년 9월부 터 1909년 5월까지 의병대가 충남지 역에서 일본군수비대와 16회, 헌병 분견소와 31회, 주재소와는 2회 모 두 49회 전투를 벌였다. 참전 의병 총 수는 2,780명인데, 그중에 피살자가 무려 456명에 달했다. 충남의병은 충남지역 독립운동의 연원이며 출발 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충남지역에서의 후기의병 봉기 한말 후기의병은 1907년 7월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일로 고종이 강제퇴위되고 이어 정미조약으로 인해 한국통감부가 내정간섭권을 대 폭 강화함에 분개하여 일어났다. 또한 이 해 8월 일제에 의해 한국군이 강제로 해산당하자 이에 항거한 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세하면서 일본과의 전면전쟁의 성격을 띠는 대일항전으로 확대되었다. 1907~1909년 후기의병기 충남지역에서의 의병전쟁은 홍주권(洪州 圈)은 물론 공주, 아산권 등 거의 전 지역에 걸쳐 전개되었다. 특히 당 진, 서산, 홍성, 예산, 보령, 청양, 서천 등 홍주권은 후기의병기 주요한 의병 활동지였다. 이 지역은 차령산맥의 줄기를 타고 가야산, 칠갑산, 비봉산, 오서산, 성주산 등이 이어져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은 의병 의 게릴라 활동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이 지역은 1896년과 1906년 홍주의병의 활동무대이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1907년 8월 이후 후기의병기에도 이 지역에서의 의병활 동은 충청남도의 어느 지역보다 활발하였다. 이 중에서도 당진, 서산지 역에서 활동한 정주원(鄭周源) 의병이 돋보인다. 당진 출신인 정주원은 1907년 8월 죽산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경기, 충남지역의 의병연합체 인 13진창의소 총대장에 추대되어 경기도 죽산 · 양지 · 수원 · 안성 지역, 충청도 당진과 서산 등지를 배로 이동하면서 활동하였다. 정주원 의진 당진 소난지도에서 전사한 의병 유골을 합장한 의병총(국민일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