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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헤이그특사가 거주했던 곳이자 이준열사가 순국했던 건물(당시 융 호텔) 전경 이준 열사의 피어린 호소를 외면한 열강의 대표들 헤이그 특사는 광무황제의 「해아밀사 친 임장」을 포함하여 미국, 러시아, 오스트리 아, 네덜란드의 원수들에게 보내는 친서 4 통과 만국평화회의 의장에게 보내는 친서 를 가지고 네덜란드로 떠났다. 두 달에 걸친 여행 끝에 헤이그에 도착 한 이준 열사와 특사 일행은 「장서」와 그 부속문서인 「일인불법행위」를 프랑스어 로 인쇄해 40여 참가국 위원에게 보냈 다. 대한제국 대표로 회의에 참석은 거절 당했으나 언론의 주목을 받아 귀빈으로 연설할 수 있었다. 언론은 헤이그 특사에 동정적이었으나 식민지를 확대하던 열강들에겐 헤이그 특사는 눈에 가시 나 다름없었고 영국과 일본의 방해로 번번이 활동을 저지받았다. 언론은 특사의 활동을 주목했지만, 각국의 대표들은 대한제국의 청원에 공감하지 않았다. 이준 열사는 일본의 방해 공작에 연일 분통해 하다가 머나먼 객지인 헤이그의 숙소에서 숨을 거 두고 말았다. 이준 열사는 에이켄무이넨 묘지에 묻힌 후 55년 후인 1963년 9월 30일에 고국으로 돌 아올 수 있었다. 이준 열사의 묘역 이준 열사 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