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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024년 9월 Special Theme  한국광복군 창설 제84주년 특집 ‘한국광복군과 미국 OSS의 합동작전’ 의에 만족하는 부분이 설명되었다. 실패한 작전? 그럼에도 남은 것은 임시정부의 국가 건설 가치 1945년 5월 독수리작전 훈련 시작 후 죽기를 각 오하고 대일전쟁 참전을 위한 고된 훈련을 소화하던 한국광복군 대원들. 그들은 그로부터 약 3개월 뒤 청 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포츠담 선언을 수용하여 항복하였다. 이로써 광복군-OSS의 첩보전, 독수리 작전은 시도도 못 한 채 무산되었다. 하지만 임시정부가 그 작전을 위해 태평양전쟁 발 발 직후인 1941년부터 약 5년간 추진하던 대미외교 과정은 마냥 헛되었다고 기억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 을까? 임시정부는 결코 중국에 위치한 망명정부라 는 제한된 정체성에 머물려하지 않았다. 임시정부는 광복 후 세계 열강이 한반도의 주인이 되지 않고, 임 시정부가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국군인 한국 광복군을 창설했다. 그리고 그 광복군을 위해 꾸준 한 외교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임시정부 에 우호적이었던 굿펠로우 등 미국인 관료들과 임시 정부를 도와준 몇몇 친한파 미국인들은 광복후 대한 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비록 중국에 있었고, 미국과 도 외교를 시도했지만 그 어느 나라에 종속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자주적이고 힘있는 국가 만들기를 목적으로 열악한 시대적 상황에도 물러서지 않고, 최강대국인 미국과도 손을 잡고 위기를 해쳐나가려 는 것. 그것이 임시정부의 일관된 외교적 노력과 자 세였다. The University of Melbourne 인문학부에서 세계사를 전공하였다. 이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 사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South Korea’s Origins and Early Rel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The Lynchpin of Hegemonic Power(공 저, Routledge, 2022)』가 있다. 이밖에 「아시아·태평양전쟁기 한미협회의 외교 활동: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한 군사 지원 청원 외교(2024)」, 「유일한의 미주 독립 운동과 고려경제회(2023)」, 「The Diplomatic and Military Relations between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and the United States: Mutual Perception  of  the Eagle Project(공저, 2022)」 등의 연구를 통해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국제관계 문제를 고찰하였다. 필자 차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