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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장군 동상건립문. 정의에는 국경이 없고 투쟁에는 산도 물도 거침이 없다. 이러한 정의로써 이러한 투쟁을 감행하여 자유세계의 노선위에 승리를 가져오고 그리하여 만인의 감격과 탄앙을 한몸에 두른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여기 동상의 주인공 다그라스 맥아더 장군이다. 그는 1880년 1월 26일 아-더 맥아더 장군의 둘째 아들로 미국에 태어나서 소위로 출발하여 오성장군의 칭호를 받음에 이르기까지 무릇 반세기에 걸쳐 가지가지 혁혁한 무공을 세운이로서 일본의 항복을 받음과 동시에 점령군 총사령관으로 패전 앨본에 주재케 되었다. 일본이 이같이 항복함으로써 한국은 해방이 되었으나 불행히도 국토가 비참하게 양단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1950년 6월 25일 공산도배가 북으로부터 민국을 침입하였을때 즉시 미국정부는 한국 구원을 결정하고 맥아더 장군에게 공산침략 항전에 참가한 모든 군대를 지휘하도록 명령하였다.
그의 탁월한 천재가 발휘된 것은 바로 이곳 인천이였다. 그 호매한 식견으로 안출된 거의 기적적인 상륙작전을 1950년 9월 15일에 장군의 진두지휘하에 결행하여 그 결과로 전세가 일전하여 자유의 승리와 민국의 구원을 가져왔으니 이것은 영원히 기념할 일이며 이것은 영원히 기념할 사람인것이다. 그리하여 감격에 넘치는 우리국민의 명의와 의연으로 각계각층 대표를 망라한 맥아더장군동상건립위원회가 김경승교수의 손에 의하여 비져진 장군의용자가 영겁을 통하여 이 거룩한 지역을 부감하도록 이 동상을 세운것이다. 장군과 그 휘하 용감한 유엔군 장병들이 우리와 자유를 위하여 이곳에서 취한 행동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못할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유독한 침투에 대한 최후 투쟁에 승리를 거둘때까지 전쟁에는 승리에 대신할것은 없다라고 말한 분이 역시 장군이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1957년 9월 15일 맥아더장군동상건립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