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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지(議政府址) 조선시대에 중앙 행정관청 가운데 가장 높은 관청으로 백관을 통솔하고 정치와 행정을 다루었던 의병부가 있던 자리이다. 1398년(태조7년)에 처음 지었던 의정부 건물은 세동이 나란히 있는 '3당 병립 형태'였다. 가운데에 한단 높은 정본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선당과 석회당이 있었다. 정도전이 지은 『도평의사청기』에 고려말, 가장 높은 관청인 도평의사사를 묘사한 내용을 보면 '청사는 높고 큰 집이 가운데 있고 날개 같은 집이 손을 모으듯 좌우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 초 의정부 건물도 이러한 모습을 계승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빈터로 남아 있었으나, 고종 즉위 후인 1865년(고종2년)에 다시 옛 제도에 따라 원래 자리에 중건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의정부는 내각으로 개편되어 경복궁 안으로 옮겨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의정부 터에 1909~1910년에 걸쳐 벽돌조 양옥의 신청사를 건립하였고,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에 내부와 경기도청 건물로 사용되었다. 광복후에는 미군정, 치안본부청사, 서울시경 별관 등으로 활용되다가 이들 기관이 모두 이전해 나간 후, 1997년부터 이 자리에 광화문시민열린광장이 조성되었다. 의정부는 초선 초 경복궁 앞 동편에 국정 최고 기구로 들어선 이래 고종 대 중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원래의 위치를 지킨 관청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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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가 있던 터인 '의정부지'는 202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발굴조사로 중심 건물인 정본당과 그 좌우에 있던 협선당, 석획당의 위치와 규모가 확인되었다. 또 의정부 영역 안에 있던 내행랑과 후원의 연지와 정자, 우물의 유적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19세기 말에서 20ㅅ기 초에 촬영된 사진 및 도면자료들과 일치한다. 의정부지는 조선시대 최상급 중앙 관청의 건물 배치 형식을 보여줄 뿐 아니라, 광화문 앞 광장을 둘러싼 역사적 경관을 구성하는 시설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의정부지는 조선 건국 직후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처 광복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의 역사적 층위를 간작한 광화문 일대의 상징적인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