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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023년 10월 Special Theme 홍범도 장군 서거 80주년 특집 홍범도와 그의 동지들 부의 선전포고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출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임시정부를 받드는 입 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 유고문의 내용은 임시정부의 기관지격인 『독립 신문(獨立新聞)』1920년 1월 13일자에도 실려 있다. 이 신문에는 ‘노령(露領) 주둔’ 문구가 빠지고 홍범도 가 ‘대한독립군 의용대장(義勇隊長)’의 직책으로, 박경 철 · 이병채 두 사람이 참모가 아닌 ‘동원(同員)’으로 수 정 되어 있다. 박경철은 간도국민회에서 홍범도의 대 한독립군을 위해 참모장으로 지정해 준 인물이었다. 이병채는 허근(본명 허재욱)의 오랜 의병 동지였다. 이 유고문을 통해 북간도(중국 연변) 지역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대한독립군 부대가 임시정부 이념과 방침을 준수하며, 다른 단체와 동포들에게 자 신들의 지시와 활동방침을 따르라고 공개적으로 선 언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주목된다. 한편, 여기 나오는 대한독립군 참모 박경철(朴景喆) 은 1885년 3월 14일 생으로 한자 이름이 박경철(朴 景哲, 朴京喆) 등으로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1916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용정촌에서 명 동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1919년 러시아 니콜리스 크 우수리스크(소왕령)에서 개최된 동지회(同志會)에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대표로 참석했다. 같은 해 12 월 대한독립군 의용대장 홍범도, 참모 이병채와 함께 ‘유고문’을 발표하였고, 1920년 북간도 등지에서 대 한독립군 참모장으로 활동했다. 1920년 5월 간도국 민회 간부, 8월에는 북간도 독립군 연합조직인 대한 북로독군부 참모부장, 1921년 5월 한인사회당 선전 부장(일부 기록에는 민사부장) 등을 맡았다. 1923년 상해 국민대표회의 대표, 1924년 동양혁명대의단 군 사부장 등으로 활동했다. 1967년 사망했다.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대한독립군 참모 이병채, 의병출신 지식인으로 『북래산록』 남겨 이병채(李秉埰)의 호는 백남(伯南)으로 전주 이씨 다. 1875년 10월 21일 전남 고흥군 과역면 백일도(白 日島)에서 태어났다. 중등학교 정도의 수학 경력을 가졌으며, 한문에 능했다. 1940년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허위(許蔿) 및 민용호(閔龍鎬) 의병장과 함께 의 병항쟁을 주도한 인물이며, 고흥 일대의 3 · 1운동에 도 참가한 인물이다. 1896년 의병에 참가하여 민용호 의병부대의 관동 구군도창의(關東九郡都倡義)에서 활약하고 1905년 대한독립군 유고문(1919. 12, 독립기념관 제공) 자유시사변 피해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허재욱(허근)과 이병 채가 제출한 보고서(1921.11.25, 윤상원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