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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6 · 25전쟁 정전70주년 특집 독립군 · 광복군에서 국군으로 활약한 인물들 30 2023년 7월 의 단원을 확보한 전국적 조직으로 발전시킨 이범석 은 해방정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 인물로 부각 되었다. 이것이 그가 대한민국 정부의 고위직을 맡 게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1948년 8월 15일 이범석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 립되면서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겸임하 였다. 8월 31일 미군정으로부터 통위부와 국방경 비대를 이양받아 국군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는 국방정책의 핵심을 연합국방으로 설정하였다. 미 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진영과 연합하여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저지하고, 한반도 전쟁에 대비한다 는 것이었다. 아울러 국군조직법과 국방부 직제령 을 제정하고 군의 정신무장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 해 국방부에 정치국을 설치하였다. 계속해서 국군의 편제와 병력도 확대해나갔다. 조선경비대로부터 지휘권을 이양받을 당시 육해 군 총병력은 5개 여단 15개 연 대에 5만 명 정도였다. 이후 6개 보병연 대와 6개 특수부대를 창설하여 10 만 명 병력으로 확대하였다. 이외에 유사시에 대비한 예비병력을 확보 하기 위해 호국군을 창설하고, 중학 교 이상에는 학도호국단을 편성하 여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대한민국 국군의 초석을 마련하 는데 심혈을 기울이던 중 정부가 청 년들의 조직을 정비한다는 명목으 로 여러 청년단체를 통합해 1948 년 12월 대한청년단을 결성했다. 이 에 따라 이범석의 세력기반인 민족 청년단은 해체되었다. 이범석 본인도 1949년 3월 정치적인 견제로 인해 국방부 장관에서 해임되었 다. 국군에서 한국광복군의 역할은 축소되었음에 도 불구하고, 이범석의 노력으로 독립군과 광복군 의 독립투쟁 정신이 대한민국 국군에 계승될 수 있 었다. 필자 김광재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광복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강사, 한국근현대사학회 이사,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중국 상해사회과 학원 역사연구소 방문학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으 로 재직 중이다. 연구업적으로 『한국광복군』, 『근현대 상해 한인사 연구』 등 다수 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첫 각료들. 앞줄 오른쪽부터 이범석 국무총리겸 국방장관, 이승만 대통령, 이시영 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