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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023년 2월 Special Theme  「조선혁명선언」 100년! 새로운 사회 건설을 꿈꾸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신채호는 피 압박민족과 약소민족 인사들로 구 성된 무정부주의 국제적 연대 조 직에 참여하여 무정부적 이상사회  건설을 실천하였다. 신채호가 「조 선혁명선언」에서 제시한 민중직접 혁명론은 이전까지 자신을 포함한  민족주의자들이 견지했던 사회진 화론에 기초한 독립운동방법론을  벗어나 1920년대 이후 그가 무정 부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혁명적 역 사관을 수립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조선 민중 자신에 의한 폭력혁명의 선언 단재(丹齋) 신채호는 1923년 1월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는  조선 민중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일본을 ‘말살’해야 할 ‘강도’라고 부르면 서 절대적인 적으로 규정하였다. 또한 내정 독립 · 참정권 · 자치 운운하면 서 일본과 타협한 세력도 적에 포함된다고 하였다. 이어서 지금까지 독 립운동 진영에서 채택했던 외교론과 준비론의 오류를 지적하고, 폭력혁 명이 유일한 수단임을 선언하였다. 그가 말하는 조선혁명은 민중 직접  혁명이라고 하면서, 민중의 자각은 타자에 의한 계몽이나 교육이 아니 라 민중 자신의 폭력적 실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에 적에  대한 암살  ‧  파괴  ‧  폭동의 폭력 투쟁을 선언하였다. 끝으로 혁명적 파괴는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하지 않으며, 사회로서 사회를 괴롭히고 해치지  않는 이상적 조선’의 건설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신채호는 문건의 제목을 ‘조선혁명선언’이라고 하였다. 인류 혹은 인 간이라는 보편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당시에 민족으로 존재했던 ‘조선’이 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존재했지만, 대 한이라는 용어를 선택하지 않았다. 과거에 조선 민족이 걸었던  국가적 독립의 길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조선’ 개념을 제시하 고자 하였다. 외교론과 준비론은 기본적으로 자민족의 혹은 외 국의 국가 혹은 정부의 존재를 상정하고 거론되는 방법론이다.  따라서 외교론과 준비론에 대한 부정은 곧 국가 혹은 정부 중 심의 독립운동 방법론에 대한 비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누가 독립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는가? 신채호는 민 중을 혁명의 주체로 설정하였다. 그의 경우 ‘조선혁명’에서 조 선은 조선 민족 전체가 아니라 조선 민중을 뜻한다. 민중은  피지배 계급과 구별되는 존재로서 강도 일본의 통치 아래에 서 정치적 자유권과 경제적 생존권을 박탈당하여 인류로서 의 기본적 생존이 불가능해진 무산 민중을 뜻하였다. 그러므 중국 뤼순(旅順)감옥에서의 신채호 무정부주의동방연맹 일원으로 1928년 타이완으로 갔다가 외국환  위조 혐의로 체포되어 중국 다롄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 감옥에 투옥 중이던 1936년 5월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