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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혼이 왔는지, 육체까지 왔는지” 임시정부 요인들의 한국 귀국까지 둘러싼 이야기들 29 등한 자격과 편의가 제공돼야 한다, ③ 군 당국의 중 요 작전에 방해받지 않고 교통편을 제공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경우에만 귀국을 허락한다는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는 사실상 군부에 책임을 떠넘 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를 전달받은 중국주둔 미군사령부가 반발하고 나왔다. 국무부는 현지사령관의 지적을 받아들여 9월 27 일 다음과 같은 새로운 지침을 주중 미국대사관에 보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 을 고려하여 건설적인 능력을 가졌으며, 미군정 틀 안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인사들의 입국은 장려되어 야 한다. 교통편의 여유가 있다면, 육군이 통제 가능 한 항공편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 남한에 주둔한 제 24군의 지휘권이 중국주둔 미군사령부에서 태평양 전구로 넘어갔다. 따라서 입국희망자들의 최종 입 국 허가는 맥아더(Douglas MacArthur) 사령부의 채 널을 이용하고 있는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John R. Hodge) 장군이 맡는다. 이로써 임정 요인들의 귀국 문제 최종 책임자는 하지 장군 소관 사항이 됐다. 국무부 지침을 알게 된 국민당 정부 외교부장 왕세걸(王世杰)은 10월 28일 최대한 빨리 임정 요인들을 한국에 보내줄 것을 요 청하는 편지를 주중 미국대사관을 통해 맥아더 사령 관에 보냈다. 한국민주당 요원들과 연락을 이어가는 김구 김구는 9월 26일 오후 4시 장개석 관저에 갔다. 여 기서 장개석과 면담을 가졌다. 김구는 장개석을 만 나기 앞서 회담 사전 준비 차원에서 자신의 요구사 항이 담긴 비망록을 제출했다. 그 첫 번째 내용을 정 리하면 이렇다. 국내 인민은 갑자기 닥친 해방과 그 공간에서 이를 이끌어 줄 지도 기관이 없어서 혼란 을 겪고 있다. 당파가 난립하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 되고 있다. 소련이 점령한 북한지역에서는 소련 점 령군의 지원을 받으며 인민위원회를 조직했다. 이 런 소식을 보고 들은 국내 민중들은 임정이 하루빨 리 귀국하여 통일을 주관해 주길 바라고 있다. 미국 의 동의를 얻어 중경에 있는 임정 요인들을 미국의 동의를 얻어 형식과 명의에 구애되지 않고 항공편으 로 귀국시켜 주길 바란다. 중경에서 직접적으로 귀 국하는 교통편이 없다면 상해까지 비행기로 타고 가 서 선편으로 한국에 갈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것 이 김구의 요구였다. 김구는 장개석의 얼굴을 바라보는 자리에서도 임 정 귀국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국 김구를 비롯한 국무위원과 경위대원 등 총 29명은 11월 5일 장개석 이 제공한 수송기 두 대에 몸을 실었다. 수송기는 중 경을 떠나 상해로 날아갔다. 다섯 시간을 날아간 수 송기는 오후 6시 상해 홍구공원에 착륙했다. 13년 동안 상해에 살면서 프랑스 조계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던 김구는 윤봉길 의거가 일어난 홍구공원을 처음 와 봤다. 그것도 13년간 기강(綦江) 등지를 떠돌 아다니며 도착한 것이다. 김구는 11월 7일 국내 우익인사들과의 교감을 이 어갔다.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의 『중앙통신(中央通 訊)』 특파원 증은파(曾恩波)의 손을 거쳐 장덕수에게 친서를 보냈다. 친서 안에는 한독당의 「정강」, 「정 책」이 들었는데, 이는 국내 우익 정당들이 한독당의 노선에 따라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한독당의 이시영과 조소앙도 국민당 안재홍에게 편지를 보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