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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조선말기 의병전쟁은 국가와 민족을 보호하기 위해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의병에 참여하여 전개하였던 항일국권수호전쟁이다. 전기 을미의병의 목적은 민비살해 항거 및 친일내각에 대한 척 결에 두었고 중기 을사의병의 기의는 을사늑약으로 빼앗긴 국권 회복으로 표출되었으며, 후기 정미의병의 창의는 일제의 침탈로 부터 국권의 수호를 위한 대일의병전쟁으로 전개되어 갔다. 강원도 원주에서 기의한 이인영이 각도 의병장들의 추대를 받 아 전국 13도 창의대장에 오른 동시에, 창의원수부를 설치하고, 서울 진격을 위해서 의병통일체인 13도 연합의병부대를 편성하 여 국제법상 교전단체로 내세운 것은 정미의병 봉기의 동기로써 국권수호의 목적이 있음을 선언문에서 밝히고 있다. “일본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고, 고종 황제로 하여금 강제 로 양위하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빼앗고, 우리 민족을 멸하려는 것이므로 이에 의병을 일으켜 일본을 비롯한 모든 외국인을 몰아내고 우리나라 독립을 보존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경기 지역은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의병 모집, 군수품 조달 등에서 유리한 조건에 있었다. 19 07 년 후반부터는 경기 북부지역 임진강 연천 지역과 남동부 지역인 양평, 음죽, 용인 등지로 확산되어 갔 으 며, 점차 이 지역은 경기의병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연천 보개산과 양평 용문산 등 산악지대가 있어 유 격전에도 유리했기 때문에 의병의 대일항전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 용문산은 경기의병진의 대일항쟁 중심지 조인환과 권득수 의병장은 군대 해산 직후 거의(擧義)하여 용문산으로 들어 가 용문사와 상원사를 근거지로 항일투 쟁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1907년 8월, 양근 읍내를 습격하여 관아와 세무서, 파출소, 우편물 취급소, 일본인 가옥 등 을 파괴하였으며, 지평에도 들어가 관아 와 일제순사파출소를 습격하여 지평군 수 김태식을 처단하는 등 항일투쟁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9월 상순. 일본군 보병 제52연대 제9중대의 공격을 받고. 양주, 파주 지역으로 일 시 물러났다. 일본군은 의병주둔지였던 상원사와 용문사, 사나사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경기북부 의병 주둔지 및 전투지 경기 양주 감악산 일대 경기의병 전투지(경기 양평군 용문산 사나사와 용문사) 대한의병 국권을 수호하라 대한의병, 국권을 수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