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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한국독립운동과 도쿄 29 일왕의 도쿄에 거주하면 서 도쿄 시가는 일왕이 사는 궁성을 중심으로 1880년대 후반부터 서구식 벽돌조 관 청 건물이 조성되기 시작했 다. 또한 서구열강과의 교류 가 많아진 상황에서 번듯한 서양풍 대형호텔이 필요하 다는 이노우에 가오루(井上 馨) 외무대신의 제안에 따라 국가적 사업에 준하여 제국호텔이 건축되었다. 이 호 텔은 1889년에 착공되어 1890년에 준공했고, 그 후 에도 증축이 몇 차례 이루어졌다. 제국호텔은 고지마 치구(麹 町區) 우치야마시타초(內山下町, 현재 우치사 이와이초 內幸町)에 있었는데, 그 옆의 광대한 들판은 1903년에 일본 최초의 서양식 정원으로 알려진 히비 야(日比谷)공원이 되었다. 히비야공원 너머에 궁성이 위치했다. 일왕이 사는 궁성은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성역 이었다. 궁성의 외원(外苑) 해자 위에 설치된 문이 사 쿠라다몬(櫻田門)이며 이를 통과하여 걸어가면 왼편 에 니주바시(二重橋)로 알려진 석교가 나온다. 이곳에 설치된 문이 궁성의 정문으로 니시노마루 오테문(西 の丸大手門)이다. 석교라는 명칭은 낯설 것이다. 원 래 석교를 지나 궁성 안쪽으로 진입하면 이층다리가 있는데, 그 이름이 니주바시였다. 그러다가 메이지시 대에 궁성을 개보수하면서 이층 다리를 철거하고 철 교로 개축하게 되어 현재는 이층 목조 다리의 옛 모 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일반인 들은 궁성 바깥의 석교를 니주바시로 통칭하게 된 것 이다. 이곳은 1924년 김지섭 의거의 현장으로 한국 인에게 알려진 곳이다. 도쿄의 도시다운 경관은 1914년에 도쿄의 관문인 도쿄 역사(驛舍)가 준공된 후 도쿄역을 중심으로 번 화가가 발달하면서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도쿄역은 도쿄스테이션호텔과 연결된 건물로, 외관상 장방형 의 3층 건물로서도 너른 공간을 차지한 데다가 르네 상스식 붉은색 벽돌 건축이라는 화려한 모습으로 일 약 제국 수도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도쿄역에서 궁성 을 바라본 위치를 기준으로 북동 방향에는 에도시대 에 막부의 어용시장이 있던 간다(神田) 구역이 있다. 이 곳에는 세이소쿠(正則) 일어학교, 니혼(日本)대학, 센슈(專修)대학, 메이지(明治)대학, 일본기독교청년회 관 등이 있어 학원가를 형성했다. 조선기독교청년회관과 히비야공원의 2 · 8독립운동 자연히 조선의 유학생들이 모여든 곳도 간다였 다. 특히 호리도메바시(堀留橋) 근처에 조선기독교 청년회관(神田區 西小川町 2-5)이 1914년에 완공된 후, 도쿄에 오는 한인의 80% 이상이 이곳에서 처음 도쿄 궁성 석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