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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여 유혈사태를 빚었다. 이후 정부의 독립협회 해산령과 민회 활동 탄압·금지로 독립협회의 활동은 막을 내렸다. 비록 독립협회는 수구적인 집권세력의 탄압으로 해체되었지만, 민중을 중심으로 한 자 주적 근대화 운동을 벌였으며 만민공동회 등을 통하여 자주적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후에 전개된 애국계몽운동의 발판이 되었다. 실력을 길러 나라의 주권을 되찾자 | 애국계몽운동 을사늑약 이후 나라를 잃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항일 의병 항쟁이 불타올랐고 한편에 서는 일제에게 빼앗긴 국권 회복을 위하여 민족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교육· 언론·산업 등의 활동을 통하여 민족의 의식과 실력을 키워야한다는 이른바 ‘실력 양성 운동’의 필요 성이 대두된 것이다. 서구 문물 수용에 우호적인 개화파와 개명(開明) 한 유교 지식인, 동학교도들은 각기 단체를 만들어 언 론·출판·교육 운동을 전개하였다. 학교를 세우고 신 문과 잡지를 발행하였으며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연구 하여 민족의식을 북돋웠다. 더 나아가 근대 문물을 받 아들이고 산업 진흥을 위한 활동에 힘썼으며,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일제로부터 우리 경제를 지키려는 경 제적 구국운동도 이끌었다. 민족 자강을 위한 애국 계 몽 활동을 벌인 대표 단체로는 대한자강회, 신민회 등 이 있다. 대한 자강회는 1906년 3월 장지연 등이 조직한 단체로, 성격은 대한 자강회 취지서에 잘 담겨 있다. 대한자강회는 전국 25곳에 지회를 두며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기관지인 『대한자강회월보』 간행과 1906년 서울에서 조직된 사회정치단체인 대한자강회의 기 관지 『대한자강회월보』 무릇 우리나라의 독립은 오직 자강의 여하에 있을 따름이다.(중간 생략) 무릇 교육이 일어나지 못하면 국민의 지혜가 열리지 못하고 산업이 늘지 못하면 국부가 증가하지 못한다. 그러한 즉 국민의 지혜를 개발하고 국력을 기르는 길은 무엇보다도 교육과 산업의 발달에 있지 않겠는가. 이는 교육과 산업의 발달이 곧 단 하나의 자강지술임을 알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