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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병을 일으켜 활동했다. 1905년 을사늑약의 소식을 듣고 이들을 시켜 이에 항거하는 상소를 올렸다. 왜적을 물리치기에 앞 서 먼저 을사오적을 목 베라는 내용이었다. 지금의 화가 개항을 받아들인 탓도 있지만, 이완용 등의 을사오적이 일제와 내통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동시에 선생은 외교권을 빼앗기고 통감부가 설치돼 앞으로 나라가 없어질 수 있다고 봤다. 지금까 지 서양세력을 물리쳐야 한다고 했던 선생이 만국공법에 물어서라도 협박에서 나온 조약을 폐지해 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절박하게 호소했다. 일제 통치 부정하며 단식 끝에 순국하다 상소를 올린 뒤 이만도 선생은 영양 일월산 서북쪽 산촌으로 들어갔다. 남루한 옷으로 지내며 산 나물로 연명하며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선생은 스스로 죄인이라 일컬었다.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재산에 자주 머물며 그 앞에 엎드려 죄인으로서 근신 생활을 했다. 1910년 류필영이 깊은 골짜기에 있는 선생에게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예견했던 일이 지만, 막상 일어나게 되니 비참한 마음에 날마다 증조부 묘소 앞에서 통곡했다. 그때 죽기를 마음먹 고 청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선생은 단식 과정과 생각을 정리하며 9월 17일 음식을 끊었다. 골짜기에서 죽으려 했지만, 종손인 이강호가 자신의 집으로 모셔갔다. 이강호가 단식을 그만두라 고 설득했으나 선생은 이를 거절했다. 가족들이 그를 찾아와 같이 단식을 하며 선생을 멈추고자 했 으나 선생이 바로 자결하려고 하기에 다들 단식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선생의 단식 소식이 전해져 종갓집을 가득 채울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일본의 관료들도 선생 을 설득했다. 단식 21일째인 10월 7일 선생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청구일기는 사람들이 이어 썼다. 일본인 경찰이 ‘강제로 음식을 먹야겠다’고 말한 순간 갑자기 선생이 큰소리로 호통 쳐 그 경찰 을 쫓아냈다. 그로부터 3일 뒤인 10월 10일. 단식 24일째 되던 날 선생은 장렬하게 순국했다. 청구 일기 이만도의 단식 순국 과정이 일기식으 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