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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24년 11월 Special Theme 11 · 3(광주)학생독립운동 제95주년 특집 ‘11 · 3(광주)학생독립운동을 다시 본다’ 계와 연대해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3월 5일 오전 9시 서울 남대문역 앞에서는 학생들 이 이끄는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날 시위에는 거 리의 시민은 물론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고 귀향길 에 오르기 위해 역으로 나온 사람들이 합세했다. 평 양에서 올라온 학생 200여 명도 시위대에 합류했다. 시위대 규모는 순식간에 1만 명으로 늘어났다. 시 위대는 태극기를 흔들면서 시가행진 에 돌입했다. 강기덕과 김원벽이 인력 거 위에 올라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 었다. 두 갈래로 나누어 이루어진 행진 대열은 보신각 앞에서 합류했으나 경 찰의 저지로 해산해야 했다. 그날 밤 경찰은 주동자들을 체포했다. 조선총독부는 학생 시위의 확대를 우려하며 3월 10일 서울 시내 중등학 교와 전문학교에 임시휴교령을 내렸 다. 그러자 학생들은 선언서를 갖고 고 향으로 돌아가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유관순도 이화학당 학생으로서 3월 1 일과 3월 5일 시위에 참여한 후 임시 휴교령이 내리자 독립선언서를 들고 3 월 13일 귀향하여 시위를 모의했고, 4 월 1일 병천 아우내 장터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동맹휴학으로 저항하다 3·1운동에서 학생들이 거리 시위에 만 나선 것이 아니었다. 동맹휴학, 즉 맹휴(盟休)를 통한 항거도 있었다. 중 등학교 이상의 학생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면, 오 늘날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보통학교 학생들은 주로 등교를 거부하며 맹휴를 벌였다. 인천공립보통학교 에서는 3월 6일에 학생 맹휴가 시작되어 3월 14일까 지 이어졌다. 경찰이 학부형 회의를 소집해 주모자 들을 처벌하겠다고 했으나, 이에 항의해 3월 15일에 도 주동한 4학년 대부분이 결석했다. 임시휴교령이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는 여학생들(독립기념관 제공) 3·1운동 당시 서울 덕수궁 앞에서의 만세시위 광경(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