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page

28 2023년 12월 Special Theme   카이로선언 80주년 특집 해외 독립운동과 한국독립운동가들의 활약 한 정서가 강력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유한국』 제8 호, 1920.12). 영국 측에서 한국친우회 창립을 주도 한 것은 로버트 뉴만(Robert Newman) 의원, 르웰린 윌리엄즈(Llewellyn Williams) 전 의원, 라일 새뮤엘 (A. Lyle Samuel) 의원, 그리고 멕켄지 등이었다. 여 기에 참석한 인사들은 “영국의 그토록 비열한 동맹국 일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일본에 대해 거세게 비 난했고, “영국 각계에 대규모 선전 활동을 벌이고 한 국이 현재 처한 상황이 우리 모두 용납할 수 없는 일 임을 알리고 일본과 한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범국가적으로 분개할 정도의 양심이 영국에 남 아있으리라고 믿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구미위원부의 런던사무소는 멕켄지가 묵고 있는 런던대학(University College London) 인근 “11a, Torrington Place”을 주소로 삼았고, 한국친우회는 르웰린 윌리암즈의 주소인 “195, Maida-vale”을 기 준지로 삼았다. 황기환은 런던 활동시 대부분 멕켄 지의 숙소에 머물렀을 것으로 보인다. 황기환은 멕켄 지, 윌리암즈 등과 소통하며 영국에서 구미위원부의 외교활동을 담당했다. 구미위원부의 런던사무소 설 치를 언론에 알리고 한국친우회 결성에 참여한 그는 11월 15일 다시 파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12월에 파 리의 한국대표부와 구미위원부의 활동 등을 총정리 한 『구주(歐洲)의 우리사업『을 발간했다. 황기환의 선전 활동과 프랑스 한국친우회의 결성 황기환은 1921년 중반까지 파리와 런던을 오가 며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1921년 4월, 일본 황태자 히로히토(裕仁)의 유럽 순방을 앞두고 ‘테러주의자’로 지목되어 영국 경찰의 심문을 받기도 했다. 런던경찰국[Scotland-Yard]에 소환된 황기환 은 당당하게 한국인들의 일본 황태자에게 어떠한 위 해도 가할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영국 경찰은 소환 한 황기환에게 차를 대접하며 정중히 심문했다. 일본 측의 부당한 요구와 황기환의 의연한 자세는 바로 언 론에 알려져 각종 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이때 황기 환은 각 언론에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혔다. 한국인들이 일본 황태자를 영국 방문 중에 암살 하려 했다는 소문이 크게 퍼졌다. 이 소문은 일 본 당국이 여러 유럽 정부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보아, 그들이 만들어 내어 퍼뜨린 것임이 명백하다. 구미위원부 주요 대표로서, 우 리가 그러한 의도를 갖고 있다는 주장을 나는 부 인하려 한다. 우리는 일본 정부와 수많은 분쟁을 겪고 있다. …… 그러나 우리는 암살자도, 광인 도 아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호소는 정의에 대한 호소였지 무력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황태자의 목숨을 앗으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 우리의 모든 노력은 오로지 법, 질서, 그리고 정의를 지향해 왔다(The Star, 1921.5.9., Daily Express, 1921.5.9; 『자유한국』 제11·12·13호, 1921.5). 황기환을 소개하는 영국 신문의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