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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77 ▒ 대통령장│박승환(朴昇煥)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만 번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는 가.” (軍不能守國 臣不能盡忠 萬死無惜) - 선생의 유서 중에서 젊은 나이에 무관이 되고 다시 근대 군인이 되다 박승환 선생은 1869년 9월 7일 서울 반촌(성균관 인근)에 서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때는 외세의 내정 간섭과 경제적 침탈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고 민생경제는 도탄에 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때다. 선생은 양주 목사를 지낸 외숙 홍태윤으로부터 한학을 익 히면서도 궁술과 총술 등 무술연마도 함께했다. 그리하여 1887년 19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해 여러 무관직을 역임했 다. 1895년 8월에 발생한 일본 낭인들에 의한 명성황후 살해 만행은 군사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는 기회가 돼 군사력 증강을 위한 군비의 확충과 근대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근대적 군사교육과 훈련을 습득해 조국과 민족을 군대해산 반대해 자결 항일 의병의 기폭제 되다 대한제국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장 재직 중 군대해산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 ● 1869년 9월 7일 서울 반촌 출생 ● 1887년 무과 급제 ● 1897년 대한제국 시위대 배속 ● 1907년 대한제국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장 재직 ● 1907년 8월 1일 자결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