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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소년회 언양사회운동의 구심점
1919년 4월 2일, 언양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1운동에 자극을 받은 울산천도교 인사들 중심으로 언양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었다. 이후 언양에는 항일계몽, 독립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언양읍성터네 자리한 언양공립보통학교 학생들, 특히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참가한 5회 졸업생들이 그 주역이었다.
그들은 언양소년회를 조직한다. 소파 방정환은 새벽마다 조기회를 가지고 운동장의 잡풀을 뽑는 손년회를 보며 "당신네의 다섯 시 나팔은 지금도 내 귀를 울리면서 내 마음을 자주 채찍질해주는 것을 감사, 감사히 알고있습니다."라고 했다.
시간이 흐른 뒤 소년회의 구성원들이 청년회의 자리를 메꾸어 언양 사회운동의 구심점이 된다.
이 소년청년회 출신으로 상해 임시정부 조사원이었단 신학업, 「현대문학」 창간 멤버 난계 오영수, 언양소년회 불온 문서사건의 주인공 이동계, 김동하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