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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71 ▒ 대한민국장 │민영환(閔泳煥) 오호!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 가운데서 진멸하리라. 대 개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사람은 도리어 삶을 얻나니 제공(諸公)은 어찌 이것을 알 지 못하는가. 단지 (민)영환은 한번 죽음으로 황은(皇恩)에 보답하고 우리 2천만 동포형제에게 사죄하려 하노 라. 그러나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저승에서라도 제공을 기어이 도우리니 다행히 동포형제들은 천만 배 더욱 분 려(奮勵)하여 지기(志氣)를 굳게 하고 학문에 힘쓰며 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 어서라도 마땅히 저 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 오호!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어다.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죽 음 을 고하노라. 「경고대한2천만동포유서(警告大韓二千萬同胞遺書)」 (1905. 11. 30) 민권 신장과 군제 개편으로 부국강병 이루자 민영환 선생은 1861년 7월 25일(음력) 서울 견지동에서 태어났다. 흥선대원군의 처남 민겸호가 선 생의 부친이었다. 광무황제와 내외종 간이고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뻘이기도 했다. 친아버지는 민겸 호이나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인 민태호의 양아들로 입양됐다. 1877년 동몽교관이 되었으며, 이듬해 17세의 나이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당시 대한제국 권력의 중심인 민씨 일파였기에 1881년 동부승지, 1882년 성균관 대사성 등 빠른 승진을 거듭하며 요직을 거쳐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친아버지는 임오군란 당시 구군인들에게 피살되었고, 양아버지는 갑신정변 당시 개화당 청년들에게 살해당했다. 본인이 출세할 수 있었던 배경이 동시에 조국 독립항쟁의 기폭제가 된 뜻깊은 순국 1898년 정부고위관료로서 독립협회를 적극 지지하고 그 후 일제의 을사늑약 강제체결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함으로써 국민의 항일의식 고취에 공헌했다. ● 1861년 7월 25일(음력) 서울 견지 출생 ● 1898년 정부고관으로서 독립협회의 자주민권자강운동을 적극지지 ● 1905년 11월 30일 을사늑약에 항거, 국민을 분기시켜 국권회복운동을 일으키고자 자결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