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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69 상해 임시정부로 가기 위해 먼저 타이완으로 의사는 오사카에서 공장직원, 상점원 등으로 일하면서 오사카 상공전문학교 야간부에서 공부했 다. 이 시기에 차별대우와 모욕적 언사를 수없이 당하면서 조국독립의 염원을 굳혀갔다. 하지만 오 사카에서는 독립의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조명하 의사는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중국 상하이 로 바로 가는 것은 일본 경찰의 통제가 심했고 신분이 노출될 위험이 있었기에 일단 일본의 지배 아 래에 있어서 비교적 여행이 자유로운 타이완으로 갔다. 그곳에서 중국으로 갈 생각이었다. 1927년 11월 타이완에 도착한 조명하 의사는 상해로 가기 위한 여비를 마련하고자 타이중시(臺中 市) 계광로(繼光路) 52번지에 있는 부귀원이란 찻집에서 매달 10원(圓)을 받고 일을 했다. 의사는 타 이완에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제하에 고통을 받는 타이완 원주민들의 실상을 봤다. 조명하 의사는 타이완에 머무르면서 대만 총독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타이완인으로부터 단도 를 구입하고 칼을 다루는 연습과 동시에 만약을 대비해 칼에 바를 독약도 준비했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고 의사는 원래 계획대로 상해로 떠날 준비를 한다. 중국 침략을 노리는 일본군의 수뇌 타이완 도착 그러던 중에 육군 특별 검열사 구니노미야 구니히코(久 邇宮邦彦王)가 온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본다. 구니노미야 는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이며 육군 대장, 군사 참의 관이다.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생각해 그를 처단하기로 마음먹는다. 당시 일제는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산둥성으로의 출병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그 전진기지로 타이완에 일본군을 주 둔시키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일군 병력이 타이완 각지 요소에 배치돼 있었고 타이완 주둔 일본군을 검열하기 위 해 구니노미야가 파견된 것이다. 의사는 타이중시에서 구니노미야의 일정을 조사했다. 1928년 5월 13일 타이중시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오전 10시에 기차 편으로 떠날 예정이라는 결정적인 정보를 입수했다. 그 정보에 따라 타 이중(臺中)역에 서 구니노미야가 숙박할 지사관사까지 철저히 답사했다. 마침내 5월 14일 운명의 날이 밝아오자 결연한 마음을 다지며 단도에 극약을 바른 다음 이를 가슴 조명하 의사의 의거 사실을 보도한 신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