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page

Special Theme • “혼이 왔는지, 육체까지 왔는지” 임시정부 요인들의 한국 귀국까지 둘러싼 이야기들 27 작된 것이다. 민혁당과 한독당의 오랜 세월 묵은 갈등과 반목 (反目)은 8·15 해방과 동시에 폭발하고 말았다. 너도 나도 힘을 합쳐야할 시점에 분열이 일어났다. 야당 인 민혁당은 임정을 해체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맞섰 다. 여당인 한독당은 당치 않은 말이라며 그들의 주 장에 어깃장을 놓아 버렸다. 해방이라는 감격적인 상황에서도 당시 중경에 있던 좌, 우익 독립운동가 의 적대감은 골만 깊어갔다. 심지어 이들은 힘을 합 쳐 하루라도 빨리 국내로 들어가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반목만 일삼았다. 이제 이들은 각자의 길 로 걸어갔다. 이것이 그들의 내부그늘이며, 심적 분 단 상태가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드리워진 그늘 김구의 눈물겨운 노력 해방을 맞이한 중경에서 활동하고 있던 임정 요인 들은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특 히 김구 등 한독당원이 주축이 된 임정요인들은 다 각도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을 쏟았다. 이들 은 중국 국민당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독촉을 했다. 하지만 이는 금방 해결하기에는 녹록한 문제가 아니 었다. 어느덧 해방이 된 시점부터 한 달이 다다른 시 점에서 김구의 정치적 욕망을 부추기는 일이 잇달아 생겼다. 상해(上海) 교민대표였던 구익균 등이 9월 10일 중 경에 와서 김구를 만났다. 구익균은 임정 지지의사 를 밝히면서 상해 한인들의 소식을 알렸다. 주요 내 용은 이렇다. 중국인들이 일본인보다 한국인을 더 미워한다. 상해 한인들의 피해가 잇달아 곳곳에 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패망하자 중국인들 은 한국인을 ‘한간(韓奸)’, 한국인 간첩 또는 일본 앞 잡이로 몰아붙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김구는 상 해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이 무렵 김구는 국내 보수 우익 진영의 영수역할 을 하고 있던 송진우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9월 7일 국민대회준비회결성대회를 마친 송진우는 이를 취 재하러 온 중국 『대공보(大公報)』 기자 편으로 보냈 다. 현재 그 편지에 적힌 내용을 파악할 수 없지만, 국내로 돌아가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김구의 욕 망을 부추긴 것은 분명해 보였다. 9월 14일 보수·우 익 진영을 대표하고 있던 조병옥과 원세훈은 미군의 손을 빌려 김구, 김규식, 신익희 앞으로 편지를 보냈 다. 그것은 “지금의 상황은 심각합니다. 임정은 최대 한 빠른 시일 안에 귀국하여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 시기 바랍니다”였다. 김구를 중심으로 한 임정 요인들의 집요한 부탁 에도 중국 국민당 정부 관계자들은 독단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세계2차대전이 끝 날 무렵 중국의 국제적 위상은 말이 아니었다. 카이 로회담 뒤 열린 얄타와 포츠담회담에 참가하지도 못 했다. 미국의 원조를 받고 국제적 위상이 쪼그라든 상태에서 자기들이 구상하고 있던 한국 문제 처리를 미국에 강력히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임 정 요인들 귀국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해결사를 자처한 중국 국민당 정부 국민당 정부 요인들은 임정 인사들의 귀국 문제 를 마냥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나름의 노력을 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