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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학생, 3·1운동으로 역사에 등장하다 27 언서를 배포했다. 2월 28일 기미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서울 시내에서 선언서를 배포하고 군중을 동원하는 일을 맡았다. 강기덕은 2월 28일 오후 4시 경 정동교회에서 민족대표인 이갑성에게 선언서 약 1,500매를 건네받았다. 그날 밤 전문학교와 중등학 교 대표들이 모여 선언서를 나누었다. 학생이 앞장선 만세시위 3월 1일이 되자 각 학교에서는 학생 대표가 나서 ‘우리들의 대표가 파리강화회의에 참가하고 있으므 로 우리는 우리의 의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오 늘 독립만세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취지의 연설을 한 후 학생들을 탑골공원으로 이끌었다. 200 여 명의 학생들이 탑골공원에 모였다. 오후 2시 기미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삼창을 부른 뒤 시가행 진에 나섰다. 시위는 해가 질 때까지 이어졌다. 이날 일본 신문인 『오사카마이니치신문(大阪每日新聞)』 기자의 눈에 띤 것은 여학생 만세 행렬이었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조선 경성(京城)에 일대 소 동 이 야기되었다. 이 일은 중등학교 이상의 한국인 학 생 전부가 결속하고 이에 다수의 여학생도 참가하여 일대를 조직하고 고 이태왕(李太王) 전하의 대장례가 다가온 것을 기회로 삼아 일대 시위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이날 이후에도 여학생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 다 검거되고 투옥되어 재판받는 모습은 한국인에게 도 신선한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경찰서에서 구치 소로 이감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증오와 분노의 격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3월 1일 서울만이 아니라 평양, 진남포, 안주, 의 주, 선천, 원산 등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날 평양의 숭덕학교 · 광성학교 · 숭현여학교, 진남포의 삼숭학교, 선천의 신성학교, 의주의 양실학교, 원산 의 광명학교 · 배성학교 · 진성여학교의 학생들이 종교 독립선언서(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