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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교회로 올라와서 물었지만, 잘 모른다고 하신다. 인터넷에 나와있는 모습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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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 사건’으로 2년여 옥살이
서울성남교회 터는 강점기 일본 천리교 조선본부사찰이었다. 북한 공산당의 압제를 피해 월남한 서북 기독교인들은 당시 새로운 성전을 열망했고 미 군정과 논의 끝에 천리교 적산가옥을 예배처로 삼았다. 서울의 영락교회(한경직) 경동교회(강원용) 신일교회(이일선)가 이때 불하받은 천리교 사찰이다. 북창동과 삼각지 사찰도 넘겨받았는데 곡절 끝에 각기 지금의 명지대와 숙명여고의 출발 터가 됐다.
성 바울전도교회는 전도하는 교회가 목표였다. 송창근은 전도대를 조직해 매 주일 저녁예배를 마치면 전도 대원을 이끌고 서울역 광장에 나가 노방전도를 했다. 그 노방전도 2개월 만에 교회운영위원회 구성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했고 이듬해 5월 제직회가 구성됐다. 그가 노방전도 했던 서울역 광장엔 현재 사이코 마코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졌던(1919년 9월 2일) 독립운동가 강우규 동상이 우뚝하다. 송창근은 강우규를 도운 배후로 지목돼 옥고를 치렀다. 1937년 흥사단 수양동우회 사건으로도 2년여 옥살이를 했다.
조선총독부 경시청이 작성한 송창근 목사에 대한 조서(위 사진). 서울성남교회 석조예배당 송창근 목사의 성빈(聖貧) 기념비.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