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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광복군을 위해 미국과 외교를 시도하다 27 일본과의 전쟁에 기여해 당당한 독립국이 되고 싶 었던 임시정부의 외교 노력 미일전쟁이라고도 불린 이른바 태평양전쟁기 (1941.12~1945.9) 미국 국무부와 군사(軍事)를 담 당하는 군부기관에서는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을 대 일전쟁에 활용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여러 차례 있 었다. 맥큔(George M.McCune)·키 니(Robert A.Kinney)·윔스(Clarence N.Weems Jr)·게일(Esson M.Gale) 등 기독교 내한선교사들의 2세 또는 가족 들인 친한파 미국인 관료들이 활약했 다. 그들은 한국인을 동맹군으로 대우 하여 대일전쟁에 첩보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다양하게 제안했다. 미국 국무 부는 임시정부 불승인 원칙과는 별개 로 이러한 방안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 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정세를 간파하며 임시정부 측은 미국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움직 였다. 임시정부 외무부장 조소앙(趙素 昻)은 1942~1944년간 수차례 주중미 국대사 거스(Clarence E.Gauss)에게 중국이 한국독립운동을 통제하고 있는 고충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임시정부 가 무기대여 지원을 받고 싶은 소망을 비추었다. 주석 김구도 1944년 6월 미 국 대통령 루스벨트(F.D.Roosevelt)에 게 편지를 보내 미국정부와 “효과적으 로 접촉”해 연합군의 즉각적인 전시작 전에 함께 하고 싶은 임시정부의 의지 를 드러냈다. 이렇듯 임시정부 측은 미국 대통령, 주중미국대사 그리고 국무부에까지 임시정부의 대일전쟁 참전 열 망을 알리며 지원금을 요청했다. 또 임시정부 산하 주미외교위원장 이승만은 그가 워싱턴에 있다는 지 리적 장점을 활용해 OSS(전략첩보국)‧전쟁부‧합 한국광복군 대원들의 구보 훈련 모습 한국광복군 제2지대 대원들의 훈련 모습(이상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