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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 연천 마전리 전투 1907년 11월 8일 오전 10시경 헌병 18명이 수 비하고 있던 마전 서남쪽 두일성 천신면에 의병 약 1,000명이 마전읍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마 전 일제 헌병분견소는 그 이전에 마전 부근에 있 는 약 1,000명의 의병이 8일 밤 또는 9일 새벽에 마전읍내에 내습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철원헌병분견소에 급하게 증원을 요청하였다. 철원헌병분견소의 중위 오타는 부하 20명과 철원수비대를 인솔하여 9일 오전 7시에 급히 마 전으로 향하였고, 김화수비대에서 파견된 일본 군이 후방에서 의병을 공격하였다. 의병은 고전 끝에 약 20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했다. 의병들 이 다시 마전을 습격할 기미를 보이자, 일본군은 하사 이하 19명을 잔류시켜 경계하였다. ▶ 연천 소목개와 외울 전투 1908년 2월 24일 의병장 연기우와 이근배 등 의병 20여 명은 신서면 대광리 소목개에서 연천 수비대를 이끌고 온 일제 헌병 모테기 케이키치 등 20여명의 헌병대를 섬멸하였다. 1908년 9월 19일 오전 9시경 외울 인근 징파리 에서 연기우가 6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제의 삭녕군수비병 30여 명과 1시간 동안 교전을 하였 다. 바로 전날인 18일에도 60여 명의 의병이 연 천에서 문산으로 향하던 일본군을 공격하였고, 그날 밤 연천읍을 습격하려던 의병 70여 명은 외 울에서 일제의 삭녕수비대와 교전하였다. 1908년 당시 마전군 북면의 징파리, 외곡리,애 동리는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천 군에 통합되어 왕징면 북삼리가 되었다. ▶ 연천 고랑포 전투 경기 장단과 마전군 일대를 중심으로 의병전쟁을 이끌었던 김수민 의병장은 1907년 10월 27일 700 명의 의병을 이끌고 장단군 고랑포(高浪浦)를 습격 해 일제의 최일선 침략기구인 헌병분파소 등을 불태 웠다. 11월 10일 김수민 의병부대는 풍덕군으로 이동해 영비포분파소를 공격하고, 이후 개성군으로 이동해 예성강의 창릉포를 공격했다. 1907년 11월 여러 의병장과 함께 13도창의군의 서 울진공작전에 참여하고자 연합의병에 가담하여 서 울을 향해 진군했다. 연기우 의병장 공적비와 연천 보개산 일대 의병 활동지 전경 경기도 장단군 고랑포 전투지(현재 연천군) 연천 백학면 마전리 전투 유적지와 안내팻말 연천 소목개 전투지 연천 외울 전투 유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