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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일제 말기 지배정책과 식민지 조선사회의 동향 27 조만간 다가올 것인데, 이때 국외의 조선인 무장력이 국내로 진격해오면 민중들이 이에 호응해 함께 무장봉기를 일으켜서 일제의 권 력을 몰아내고 자주적으로 조선을 해방시켜 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에 대비하여 국내에서도 미리 그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국내에서 이러한 인식과 준비는 1930년대 에 끈질기게 전개된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의 마지막 조직인 ‘경성콤그룹’을 비롯해 8.15 직전에 본격적으로 건국 준비에 착수했던 조 선건국동맹에 이르기까지 비밀결사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 외에도 청년 학생을 중심으로 한 소 규모 비밀결사 조직 시도는 국내와 일본을 통틀어 300여 차례 이상 시도되었으며, 일제 패망이 가까워 진 1943~1944년 무렵에는 전국 각지에 은둔해있던 공산주의자들이 소규모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소규모 비밀결사운동에는 조선과 일본 내 선 진적인 청년·학생층을 중심으로 노동자·회사원 등 전 계층이 참여하였다. 이 결사들은 대부분 자생적· 자발적으로 결성된 것으로서, 실력양성과 민중의 무 장봉기를 준비하려는 욕망을 표출했다. 대표적인 조 직으로 국내에서는 상록회, 다혁당, 철혈단, BKC단, 조선인해방투쟁동맹(CHT), 무등회, 흑백당, 조선독 립당, 화령회, 화랑회, 백의동맹, 민족주의조선독립 사회노동당, 조국해방단, 일심회, 김일성대, 삼천당, 조선민족해방협동당, 결심대, 보광당, 대한애국청년 당 등이, 일본에서는 평안그룹, 조선독립청년단, 조 선독립청년당, 와룡회, 민족부흥회, 계림동지회, 죽 마계, ‘우리조선’독립운동그룹, 북성조그룹, 협화훈 전주교대에 세워진 항일학생운동기념비. 1942년 6월 전주사범학교에 결성된 항일조직 ‘우리회’는 만 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겠다는 행동강령을 세우고 만 주 진출을 모색했다. 춘천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이 1937년 3월에 결성한 상록회의 독립운동 을 기념하기 위해 춘천고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상록탑’(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