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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이토 총독과 체격과 생김새가 비슷한 일본인민회 이사인 사토(佐藤虎次郞)였다. 선생은 사이토 총독 을 처단했다고 생각하고 재빨리 차에서 뛰어 내려 재동 쪽으로 달아났다. 뒤에서 수십 명의 일경이 추격했다. 송학선 선생의 의거로 촉발된 6.10 만세운동 쫓아온 수 십 명의 일본 경찰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으나 결국 머리에 상처를 입고 붙잡히고 말았다. 일경에 체포될 때까지 선생 은 자신이 처단한 사람이 사이토 조선총독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 래서 심문를 받는 과정에서도 당당하게 심문을 받았다. 일제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알았는데 사이토 총독 처단을 위해 자동차를 습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다. 선생은 처단한 자가 사이토 총독이 아닌 데에 크게 실망했다. 검찰 심문이 진행되는 동안 선생에 대한 소문이 퍼져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재판을 받은 과정에서도 선생은 언제나 당당한 태도로 일제의 행 위를 꾸짖고 의거의 동기를 밝혔다.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 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총독을 못 죽인 것이 저승에 가서도 한이 되겠다.” 사형을 선고받은 선생은 항소할 생각이 없었으나 가족의 만류에 항소했다. 변호사는 항소에서 사형만은 면하려 했으나 결국 사형을 판결받았고 1927년 5월 19일 오후 2시 서대문형무소 형장 에서 아무도 모르게 사형이 집행됐다. 가족들은 유해를 찾아가라는 통지를 받고 선생의 사형 사 실을 알게 됐다. 그의 나이 30살 때 일이다. 창덕궁 앞의 송학선 의사 의거 터 송학선의사의 사형집행을 알리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