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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24년 3월 Special Theme 3 · 1운동 105주년특집 “3 · 1운동의 지역적 전개양상과 특징” 서를 짓도록 했다. 2월 8 일 유학생 학우회는 도쿄 의 조선기독교회관에서 총 회를 열고, 여기에서 백관 수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 다. 일본 경찰은 백관수를 비롯하여 학생들을 연행했 고, 9명을 기소했다. 한편 서울에서는 중앙학 교의 교장 송진우(宋鎭禹), 교사 현상윤(玄相允), 보성 학교 교장 최린(崔麟) 등이 1918년 가을부터 변동하는 시국에 관해 논 의를 하고 있었다. 또 천도교측의 권동진(權 東鎭), 오세창(吳世昌), 최린 등도 시국에 관 해 논의하면서 자치운동을 모색하고 있었 다. 그런 가운데 1919년 1월 10~15일 경 도쿄 유학생 송계백(宋繼白)이 서울에 와서 선배인 현상윤을 만나 유학생들의 독립선언 서 초고를 보여주었다. 이에 현상윤은 최린, 송진우, 최남선 등과 만나 유학생들의 독립 선언에 호응하여 국내에서도 독립선언을 해 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최린은 천도교 측을 끌어들이기 위해 손병희, 권동진, 오세 창과 만났고, 이들은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천도교가 이 운동을 주도하기로 하고, 운동 의 방법으로 독립선언서의 발표, 군중의 만 세시위 운동, 강화회의와 미국 대통령에게 독립청원서 발송 등을 채택하였다. 또 독립 운동의 세 가지 원칙으로 대중적 운동, 일원 우드로 윌슨 전 미국대통령(공식 초상화, 나무위키 제공) “핍박상황 윌슨에게 전해달라.” 여운형이 1918년 11월 크레인에게 보낸 편지(1918년 11월, 역사 비평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