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page


256page

애국지사 이용락 공의 묘지 안내 이용락 공(1897~1972)은 조선 최초의 통신사였던 충숙공 이예 선생의 16대손이자 임진왜란을 당해 기박산성에서 창의한 선무원종공신 이경연의 11대손으로서 울산 울주군 온산읍 덕신리 신밤마을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만세운동의 불꽃이 타오르자, 공은 동년 4월8일 마을 청년들과 함께 남창만세운동을 일으켰으며, 이는 학성이씨라는 문중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3.1운동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3.1만세운동의 현장에서 돌아온 이재락이 품에 숨겨 온 독립선언서는 이수일을 통해 신밤마을에 전해졌고, 공과 문중 청년들은 공의 집에서 밤새워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남창장날 장꾼 및 상인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다. 군중의 의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으나 일본 군경의 총칼 앞에 대열은 무너지고 동지들과 함께 체포된 공은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그 후 일본 당국의 감시와 핍박 속에 해방의 그날까지 고난의 삶을 살았고, 60대 노인이 되어 병고와 가난 속에서도 8년간 전국의 3.1운동 현장을 누비며 생존자들의 증언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을 검토하여 1,200쪽에 달하는 『3.1운동실록』을 출판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가장 권위있는 3.1운동 역사서로 평가받고 있다. 공은 이 책이 출판되고 3년이 지난 1972년 6월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함으로써 공의 민족혼과 애국정신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