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page
Special Theme • “혼이 왔는지, 육체까지 왔는지” 임시정부 요인들의 한국 귀국까지 둘러싼 이야기들 25 이 글은 8월 15일부터 11월 24일 대 한민국임시정부 요인 1진이 한국에 도착하여 첫 번째 공식 기자회견과 귀국 인사 방송할 때까지를 적었다. 이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서술 하고 있다. 먼저 해방 뒤 곧바로 일어 난 내부분열 과정을 살폈다. 다음으 로 좌충우돌 귀국 과정을 알아봤다. 여기서 임정 요인들의 귀국이 왜 그 리 늦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됐다. 이 점을 이글에 담았다. 귀국 뒤 본격적인 활동은 다음 기회에 서 술하려고 한다. 결국 김구를 위시한 임정요인들은 귀국 문제 해결 과정에 서도 철저히 배제 당했고, 한국에 돌 아와서도 자기 뜻대로 연설할 수 없 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것은 해방되 는 날 여러 독립운동가가 걱정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즉, 한국 인들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고 연합국의 도움을 받아 해방을 얻은 대가인 것이다. 1. 스스로 만든 그늘 축제와 걱정 8월 15일 중국 중경(重慶)의 날씨는 화창하고 맑았다. 일본 항복소식 을 들은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이때 일본 항복 소식을 알리는 신문 호 외가 날아 다녔다. 그것을 주어서 본 한인들은 한국이 해방됐음을 알렸 다. 일반 중국인과 한국인들은 말 그대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이며 해방을 축하했으며, 어떤 이들은 폭죽 을 터트리고 총을 공중에 쏘았다. 이날 밤을 새는 줄 모르고 즐기며 웃 으며 보냈으며, 어떤 이는 감격에 북받쳐서 끝없이 굵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독립운동가가 해방을 맞이함에 있어 상반 된 입장을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 위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면, 독립운 동가의 상당수는 그늘이 그들의 머리를 드리웠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 본을 물리치지 못하고 연합국이 일본을 패망시켜 해방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당시 적지 않은 독립운동가는 해방의 기쁨과 동시에 앞으로 활 동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이라고 보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정)의 수장이었던 김구(金九)가 자신의 일기에 남겨 놓은 기록을 통해 서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김구가 일기에서 언급한 “다가올 일이 걱정됐다”는 것은 독자적인 힘 이 아닌 연합국의 힘으로 일본을 패망시킨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김구와 조소앙은 8월 17일자로 트루먼 대통령 앞 으로 편지를 보냈다. 물론 이 편지는 이승만에게 먼저 전달됐으며, 그 의 손을 빌려 트루먼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일본을 패망시킨 연합국에 진심으로 고맙다. 다가오는 평화회의 및 연합국 구제부흥기구(United Nations Relied and Rehabilitation Administration, UNRRA) 등과 같은 한국과 관련된 공식, 비공식 회의에 임정 요원을 파견할 것이니 받아줘야 한다.” 이것이 이날 보낸 서한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구의 요청은 단 한 차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이 아닌 남의 힘으로 일본을 무너뜨렸다는 것은 한국 독립운동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