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page

Special Theme • 학생, 3·1운동으로 역사에 등장하다 25 일제강점기, 학생들은 식민지민으로  살면서 조선시대 신분 차별보다 강 고한 민족 차별을 받는 현실에 저항 하고 독립을 희망하기에 만세시위에  나섰다. 그렇게 학생은 3 · 1운동으로  처음 정치사회적 주체로 등장했다.  3 · 1운동 역사에서 맨 앞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2 · 8독립선언’을 발표한  도쿄 유학생들이었다.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된 만세시위가 세 달간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학생들 이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3 · 1운동 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독립을 향한  열정은 6 · 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 동으로 이어졌다. 민족 차별에 항거하며 독립을 꿈꾸다 조선총독부는 1919년 3·1운동의 전국적 확산의 원인으로 학생의 선 동을 꼽았다. “선언서의 배포와 학생들의 선동에 따라 하층민은 물론 청년 학생들 도 조선은 독립될 것이라고 믿는 자가 있었고, 상류층도 한때 반신반의 에 빠졌으며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이를 믿었기 때문에 운동이 확대되었다.” 서울로 유학을 오거나 지방 도시의 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은 조선총 독부가 만세 시위 확산을 막고자 휴교령을 내리자 독립선언서, 지하 신 문, 격문 등을 챙겨 고향으로 돌아가 만세 시위 소식을 전하고 또한 만 세시위를 조직했다. 학생들은 왜 만세 시위에 앞장섰을까? “조선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또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의 대우 에 차이가 있다. 또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이 받고 있는 교육의 정도에 도 차별이 있다. 이와 같은 것을 항상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독립을 하면 그런 불만이 없어질 것이므로 독립을 희망하는 것이다.” 2 · 8독립선언을 이끈 도쿄 유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