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page

Special theme • 관동대지진과 조선총독부 25 민정책에 불리한 유언비어에 대해서도 사찰하였다. 민정사찰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 다. 첫째는 관동대지진에 대한 민족적 감상, 둘째 는 의연금 모금에 대한 감상, 셋째는 유언비어에 대 한 조사였다. 민정사찰 초기에는 단순히 관동대지진 에 대한 단순한 민심과 의연금 모금에 대한 인식 파 악이었지만, 점차 유언비어에 대한 조사가 많아지고 있다. 이는 식민통지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는 것 에 대한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보다 중요하게 파악하 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언론의 통제와 민심의 회유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총독 부는 언론을 이용하여 민심을 회유하고자 하였다. 당시 언론으로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민족 지로 분류하고 있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있 었다. 이들 신문 중에서 민심 회유에 활용할 신문은 『매일신보』였다. 총독부는 강점 직후 『황성신문』 등 한국인이 발행하는 모든 신문을 폐간하고 『매일신 보』만 살려두어 시정 홍보에 적절하게 활용하였다. 때문에 『매일신보』는 관동대지진 이후 식민지배를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인의 민 심을 회유하는데 가장 적합한 신문이었다. 그런 점 에서 『매일신보』의 관동대지진 보도는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의 식민정책을 충실히 전달, 홍보하였다. 그렇지만 『매일신보』도 식민정책의 기휘(忌諱)에 배 치되거나 저촉되면 삭제되기도 하였다. 『매일신보』는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 정부와 총독 부에서 조선인을 회유하기 위한 담화를 그때그때 보 도하였다. 당국자인 아리요시(有吉)는 관동대지진으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 사를 대서특필한 매일신보(1923.9.10자)  일본 보수 언론인 요미우리신문이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앞두고  당시 발생했던 조선인 학살 사건을  1면에 보도했다(2023.6.13. 자, 동아일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