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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41 ▒ 대통령장│김익상(金益相) 1921년 9월 12일 오전 10시 20분경 전기시설 수리를 한다며 조선총독부 청사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2 층에 올라가 폭탄을 던졌고 폭탄은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몰려온 헌병들에게 “2층으로 올라가면 위험하다 ”라 는 말을 남기고 걸어 나왔다. 그가 바로 김익상 의사다. 가난한 청년의 삶 궤적을 크게 바꾼 중국행 김익상 의사의 정확한 출생일은 알 수 없다. 다만 1922년 상해 황포탄 의거 당시의 나이가 28세로 보도된 사실을 고려하면 1895년생으로 생각된다. 의사의 본적은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공덕리로 지 금의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이다. 성장 환경은 넉넉하지 못했다. 부친은 일본사람과 함께 목재 장사를 하다가 그에게 속아서 재산을 탕진했고 그 때문에 다니던 삼호보성소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철공소 견습공으로 취직한다. 1919년경에는 서울 교북동에 있던 담배 회사인 광성연초공사에서 근무하게 됐다. 인생을 크게 바 꾸게 된 시기는 1921년이다. 그는 봉천지점의 기계감독으로 발령이 나 중국으로 가게 됐다. 어릴 때 부터 비행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중국의 비행기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한 후 천진과 상해를 거쳐 비행학교가 있는 광동으로 갔다. 하지만 당시 광동의 호법정부는 북벌에 치중하느라 비행학교 운영을 일시 중지하고 있었으므로 식민통치의 심장에서 폭발한 독립에 대한 의지 조선총독 처단위해 총독부에 폭탄투척 후 북경으로 탈출, 상해에서 일본 전 육군대신 처단 시도(황포탄 의거) 사형을 선고 받고 20여 년간 복역했다. ● 1895년 서울 마포 출생 ● 1919년 광성연초공사 근무 ● 1921년 광성연초공사 봉천지점 기계감독 ● 1921년 총독부에 폭탄 투척, 육군대신 처단 시도 ● 1943년 일본 고등경찰 연행 후 암살로 추정, 행방묘연,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