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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한국독립운동과 국제도시 한국독립운동의 세계적 전개 24 2023년 4월 국민대표회의가 실패로 돌아간 뒤 1920년대 후반 에 들어 독립운동단체들을 하나의 ‘대혁명당’으로 통 합하기 위한 민족유일당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 운 동이 일찍 나타난 곳은 베이징이었다. 1926년 그곳 에서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가 창립된 것이다. 북 경촉성회는 상하이 임정의 안창호와 베이징 창조파 의 지도자 원세훈이 주도하여 결성한 것이다. 1927 년에 들어 상하이 · 광둥(廣東) · 우한(武漢) · 난징에서도 연이어 유일당촉성회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각지 촉 성회 대표는 그해 11월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 관내 촉성회 연합회를 개최했으며, ‘이당치국’의 유일독립 당주비회를 결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1928년 들어 유일독립당주비회의 추진은 정체 상태에 놓였다가 1929년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는 해체되었다. 이후 중국 관내에서의 민족유일당운동은 중단되고 말았다. 신사상의 수용과 청년 유학생들의 민족운동 1920년대에 들어 상하이와 베이징의 독립운동가 들은 사회주의·아나키즘 등 신사조를 수용하여 다 양한 형태로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이동휘 등이 연 해주에서 상하이로 와 임시정부 각원으로 부임하면 서 사회주의가 중국 관내 지역에서 확산되기 시작하 였고 1921년 이동휘를 중심으로 고려공산당(상하 이파)이 결성되었다. 베이징의 한인 사회주의자들은 주로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연결되어 활동했 고, 그 책임자는 장건상이었다. 장건상은 러시아 이 르쿠츠크에서 열린 고려공산당(이르쿠츠크파) 창립 대회에 대표로 참석한 뒤 베이징을 중심으로 톈진 등 화베이(華北) 일대에 선전 활동에 몰두했다. 한편, 베이징의 일부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인 아나 키스트들과 교류하면서 아나키즘을 독립운동의 수 단과 방법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선구자인 신 채호는 리스청(李石曾) 등 중국인 아나키스트들과 교 김성숙(1898~1969)의 중산대 졸업사진 장지락(1905~1938). 1931년 체포됨.장건상(1883~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