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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 순국선 열 독 립 항쟁사 23 쟁을 계획하고 전국 의병진에 격문을 보내 의병 동참을 촉구하고 청나라에 군사원조를 요청하였다. 또한 통감부에는 태황제 복위, 외교권 반환, 통감부 철거 등 30여 개 조에 달하는 요구사항을 전달 하였다. 허위가 교수형으로 순국하자 허위와 함께 활동한 김수민 의병장은 적성, 강원, 충청, 황해도 일대에서 전투를 계속 벌였으며 이은찬 의병장은 양주·포천·연천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이미 1906년 장수읍을 탈환하고 1907년 무주전투에서 승리한 문태수 의병장은 영남·호남·호서 일대에서 항쟁을 계속하였으며 1910년에는 서울로 진격하고자 이원·영동·옥천 등지를 공략하였 다. 호남지방에서는 농민출신 안규홍 의병장이 1908년 2월 토벌진을 구성하여 수색해오는 일본군을 맹공격하여 괴멸시키고 무기를 비롯한 많은 전리품을 획득하였다. 이어 1908년 8월 진산에서 격전 을 벌여 큰 승리를 거두었고, 1909년 3월에는 일본군을 기습 공격하여 역시 큰 승리를 거두었다. 황해도 평산에서는 이진룡이 선봉장이 되어 1908년까지 일본군과 287회에 걸친 전투에서 많은 승 리를 거두었다. 의병장이 된 이후에는 무기를 확보하기 위하여 연해주로 건너간 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돕기도 하였다. 신식 무기를 확보하여 다시 황해도로 돌아와 활동을 이어나갔다. 한편, 북쪽 국경선 너머 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는 홍범도와 이범윤이 이끄는 의병 부대가 국내 진공 작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1907년~1909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벌인 전투가 2,700여 회에 달하 였고 여기에 참가한 의병만도 14만여 명이었다. 의병 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일제는 우리나라의 국권을 완전히 빼앗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1909년 9월, 이른바 ‘남한 폭도 대토벌 작전’을 실시하였다. 대규모 부대를 동원하여 의병을 색출하 고 근거지를 완전히 없애버릴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무렵 한반도 북부지방에서 활동하던 의병들은 만주와 연해주로 이동해 항쟁을 계속하였지만, 남부지방 의병들은 전라도 지역으로 활동 지역을 옮겨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일제는 의병부대들 을 제거하기 위하여 보병 2개 대대와 해군함정을 동 원하여 잔인하고도 무차별 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전 남한대토벌로 불태워진 마을 일제는 대규모 부대를 동원하여 의병 의 근거지를 완전히 없애버릴 계획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