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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29 ▒ 대한민국장 │강우규(姜宇奎) 의사 1919년 9월 2일 남대문역 앞에서 천지를 진동시키는 큰 폭음이 울렸다. 그해 조선 총독부 총독으로 부임해 온 사이토 마코토가 탄 마차를 향해 날아간 폭탄은 미처 마차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몇 미터 앞에서 터졌다. 그 폭 탄을 던진 이는 환갑이 넘은 강우규 선생이었다. 노령의 나이에 실행한 강우규 선생의 의거는 전국에서 수많 은 비밀결사가 조직되는 자극제가 되었다. 평생을 몸 바친 민족 교육과 계몽운동 강우규 선생은 1855년 7월 14일 평안남도 덕천군 무릉면 제남리에서 농가의 4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누나의 집에서 자라며 친형에게 한학과 한의학을 배웠다. 근대화의 물결을 바 라보면서 점차 개화사상에 눈을 뜨고 기독교에도 몸 담아 집안 어른들 과의 갈등으로 1883년 함경남도 흥원으로 이주했다. 흥원에서 한약방을 연 선생은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 이 재산으로 교 회와 학당을 세워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며 함경도 일대에서 민족 교육과 기독교를 통한 민족 계몽 운동에 앞장섰다. 쉰이 넘는 나이로 계몽 운동을 펼치던 강우규 선생의 마음에 독립항 쟁의 불을 지핀 사건이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독립 위해 죽음도 불사했던 65세 애국지사의 용기 서울역 앞에 강우규 선생 동상이 있다. 일제통치의 최고 책임자 사이토(齋藤實) 총독을 처단하기 위해서 남대문역 앞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그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 1855년 7월 14일 평안남도 덕천 출생 ● 1910년대 만주에서 동광학교(東光學校) 등을 설립, 민족교육 실시 ● 1919년 노인동맹단에 가입 남대문역에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폭살 기도 ● 1920년 11월 29일 (65세)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