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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이용익 · 이준 · 이동휘 · 오상규 등 한북흥학회와 서북학회 중심으로 계몽운동 적극 전개 오상규, 한북흥학회 · 서북학회 회장 맡아 국가 위기상황에서 민간이 근대화와 국권 수호활동 전개 대한제국 후기 구국계몽운동, 광복 · 근대국가 건설 기초 애국계몽운동, 의병전쟁과 함께 한국독립운동의 원류 대한제국 후기의 구국계몽운동은 ‘구국의병운동’과 짝을 이루었다. 20세기 초 한민족은 구국계몽운동과 의병전쟁의 양면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절망의 시기’를 ‘대분발의 시기’, ‘민족역량 증강의 시기’로 역전시켜 훗날 나라를 되찾아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기초를 만 들었다. 한국 최초의 애국계몽운동 단체는 교육 진흥을 내세우고 1904년 6월 서울에서 설립된 국민교육회였다. 함경도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던 이용익 · 이준 · 이동휘 · 오상규 · 이종호 등은 한북흥학회와 서북학회를 중심으로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04년 러일전쟁 발 발 이후 국권회복운동은 크게 의병운동, 계몽운동, 국채보상운동 등으로 전개되었다. 대구지역에서 애국계몽운동은 대구광학회 · 대구 광문사 · 대한협회 대구지회 · 교남교육회 · 달성친목회 등이 주도했다. 1910년대 독립운동은 대한제국기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전쟁을 통한 국권회복운동에서 축적된 이념과 경험을 내부적 역량으로 승화시킨 결과였다. Theme 1. 함경도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적 의의・김형목 Theme 2. 괴정 오상규의 한북흥학회·서북학회 활동과 애국계몽운동・윤정란 Theme 3. 구국계몽운동과 신민회・이선민 Theme 4. 근대 대구의 애국계몽운동과 그 한계・권대웅 광복 제79주년 특집 ‘대한제국기 구국계몽운동의 재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