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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의기상통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할것을 맹약하고 1913년 영주 풍기에서 채기중 유창순 유장렬 한훈 정운기 강병수 김병렬 조용필 윤창하 등 동지들과 규합 대한광복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구구항일투쟁에 나섰다. 이때부터 선생의 구국항일독립투쟁은 결사적이었다. 이후 기규모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목적으로 재차 1915년 8월에 대구달성공원에서 시회를 가장하고 박상진 우재룡 노백린 김좌진 김경태 김한종 장두환 엄정섭 권영만 등과 회합하여 조국광복을 위한 4대 행동강령을 채택 천지신명과 태황조 단군신전에 맹서하고 광복단 조직을 개편 강화하여 투쟁활동의 범위를 더욱 넓혔다. 만주 지나 등지의 국외망명투사 그리고 상해임시정부요인들과 종횡으로 유대를 맺어 외적으로 혹은 내적으로 조직적으로 개인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여 해외의 군관학교로 보내기도 하고 혹은 요로의 왜적이나 친일배역자를 살해하기도 하고 혹은 무기를 구입하여 은익하였다가 위급할때에 사용하기도하고 이러한 까닭으로 왜경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끝내 함구 무언으로 항일기밀을 누설하지안니하였으니 선생의 일생은 고난과 형극의 이정이었으며 그때문에 또한 충렬과 애국애족의 영광스러운 희망에 찬 일생이기도 하였다. 슬프다 선생께서 자나깨나 잊지못하시던 조국광복을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영광의 날 8월15일을 몇일 앞두고 72세를 향년으로 서거하시니 그 애국충혼은 아마도 눈을 감고 편안히 잠드시였으리라. 선생의 위업은 영남출신 독립약전 제1집과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와 한국독립사등에 상세한 사실이 전해지고 있을뿐아니라 1977년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