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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특별 초대석  만나고 싶었습니다 어재선 충장공 어재연장군 추모 및 신미양요기념사업회 이사장 22 2023년 11월 제, 1864년(고종 1) 장단부사(長湍府使), 1866년 공 충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이어 함경도의 회령(會寧) 부사가 되어 북쪽 변경지방의 청나라 비적을 토벌하 고 치안을 확보했다. 또한 이 때 장시(場市)를 개설하 는 등 변경 무역을 활성화했다. 1871년(고종 8년) 미 국 아시아함대의 강화도 내침으로 신미양요가 발생 했다. 이 해 6월 1일 손돌목[孫乭項]포격사건이 발생해, 한미간에 최초의 군사충돌이 일어났다. 이후 진무중 군(鎭撫中軍)에 임명되어 광성보(廣城堡)로 급파되었 다. 6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광성보에 부임, 미 군과 대치했다. 6월 10일 어재연 장군은 1886년 조선의 군민들이 평양의 대동강에서 침몰시킨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강화도를 침략한 미국 함대에 맞서 강화도 광성보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며 적과 대치했다. 당시 월등한 무기체계와 화력을 앞세운 미군과 싸움 을 벌 이던 조선 병사는 대부분 숨졌다. 미 해군제독 로저 스는 군함 5척에 수병 1,230여명과 함포 85문을 적 재하고 조선 침략길에 올랐다. 미군은 강화도상륙작 전을 전개하여 초지진을 점거했다. 6월 11일 덕진진 을 함락한 미군은, 마지막으로 광성보공략에 나섰다. 이 때 광성보에 총사령관을 뜻하는 ‘수자기(帥字 旗)’를 게양하고, 침공해 오는 미군을 격퇴할 태세를 취했다. 미군은 광성보에 대한 수륙양면작전을 개시 해서, 해상에서는 함포사격, 지상에서는 야포사격으 로 초토화 작전을 전개했다. 마침내 광성보로 돌입 한 미군과 어재연군 사이에는 육박전으로 치열한 전 투가 벌어졌다. 어재연은 임전무퇴의 결의로 직접 장검을 빼들고 적을 무찔렀고, 대포알 10여 발을 양 손에 쥐고 적군에게 던지며 끝까지 항전하다 장렬하 게 전사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어 이사장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 화도를 침략했을 때, 어재연 장군이 광성진을 수비 했다는 서술이 간혹 보이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 신미양요 전투장면을 그린 기록화        전투 직후 수자 깃발 앞에서 기념촬영한 미군 병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