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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15 약이 체결되어 국권이 침탈된다.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선생은 강원도 홍천에서 1906년 관동 의병을 일으킨다. 선생은 끊임없이 일본군을 괴롭혔고 1907년에는 이강년과 연합해 강원도와 충청 도 일대에서 일본군과 결전을 벌인다. 하지만 결국 1910년 한일강제합병으로 국권이 상실됐고 일본은 국내에 남아있던 의병들을 제거하 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전과 달리 물질적 정신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상당수 의병은 만주 로 떠나는데 선생도 마찬가지로 만주에서 의병투쟁을 계속한다. 항일망명지사의 통합 독립단체 ‘대한독립단’ 창설 1919년, 국내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일제 의 탄압을 피해서 혹은 일제와 맞서 싸우기 위 해서 만주로 망명해온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수십만 명의 청년이 일본과 맞서 싸우기를 원 하자 그해 4월 13일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의병 장과 유림 그리고 독립단체 대표들이 유하현 삼원포 대화사에 모인다. 박장호 선생은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개 별적인 행동보다는 하나의 단체로 모여 적극적 인 독립투쟁을 해야한다”라고 강조했다. 선생 의 말에 동감한 대표들은 항일망명지사들과 함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창설하고 박장호 선생은 도총재에 취임한다. 동시에 젊은 청년들을 모아 독립군을 편성한다. 1919년 9월 단원 20명이 함경북도 갑산 동인면 금정의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하지만 선생은 단순히 투쟁활동만 벌인이 아니라 국내외 각 지역 100여 개소에 대한독립단 지단을 설치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보민회, 강립단 등 친일단체 박멸과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제거 하는 데 노력했고 만주지역에서는 거류 한인 마을에 100가구를 하나의 구로 묶어 그것마다 구관을 두고 자치행정을 실시할 수 있게 지원했다. 대한독립단의 활동과 분열 지단 조직은 국내 총지단장에 홍제업, 만주지방 총지단장은 유일우였다. 각 도에는 담당자를 둬서 지단을 운영했다. 이들은 3, 4명씩 결사대를 조직해 평안남북도의 조선총독부 예하 경찰을 습격하고 대한독립단의 경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