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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11 ▒ 독립장│김규식(金奎植) 살다 보면 동명이인을 종종 만나게 된다. 독립항쟁가 중에도 동명이인이 있다. 그중 김규식이란 분이 세 분 있 는데 북만주와 동만주에서 활약한 김규식 선생은 북로군정서에서 대대장을 맡아 청산리 전투에 직접 참전 해 일본군을 거의 전멸시켜 한국 무장독립항쟁사에 빛나는 한 획을 그었다. 의병 활동과 만주에서 독립항쟁을 한 대한제국군 출신 김규식 선생은 1882년 1월 15일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의병항쟁에도 참여했고, 북로군정서에서 대대장까지 역임하며 청산리전투에 참전한 사람이다. 김규식 선생은 의병활동과 더불어 만주지역 활동에서 볼 수 있듯 무장투쟁을 기본 수단으로 한 독립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선생은 대한제국의 장교로서 부위, 오늘날의 중위로 근무했다. 그에 관한 언급이 처음 나오는 자 료는 1908년 의병항쟁에서다. 아마도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당하자 의병항쟁 에 뛰어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주요 활동지역은 강원도 철원 일대였다. 일제의 사료를 보면 1908년 4월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철원 지방을 횡행’하던 ‘전 육군참령 김규 식’이 인천에서 체포되었다고 나온다. 활동지역으로 보아 양주 출생의 김규식 선생에 관한 설명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한때 감옥에 갇힌 적도 있다는 이야기다. 의병항쟁 중 부상을 당해 은신했다는 설명도 있다. 김규식 선생은 1912년 3월 만주로 망명한 이후, 몇 년간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아직 발견되 청산리에서 적 섬멸 항일투쟁사의 빛나는 한획 만주 왕청현 서대파에 설립한 연성사관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북로 군정서 대대장으로 청산리전투 승전의 주역이다. ● 1882년 1월 15일 경기도 양주 출생 ● 1930년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 1928년 고려국민당 군사부위원 ● 1926년 고려혁명당 중앙위원 ● 1925년 신민부 참여 ● 1931년 3월 23일 만주 주하현에서 피살, 순국 ●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