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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구의사 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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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은 외적의 침략을 받을 때마다 백의출전의 의거로써 보국충절을 다하였다. 임진왜란시 의병들의 활약과 한말 왜적의 침략에 항거한 의병의 활동은 생명보다 절의를 중히 여기는 우리민족의 긍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한말 호남지방에서 의거한 최익현, 임병찬, 이상용, 전해상, 이규홍 등은 위국충절로 청사에 빛난 분들이거니와 여기 이 고장에서 낳은 일문구사야말로 그 충절이 극에 달하였다. 9의사는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서 출생한 유중화(치복), 현석, 영석, 준석, 태석, 병석, 연청, 연풍, 연봉 등 9인이다. 이들은 고려말 문화시중을 지낸 유탁을 선계로 하고 조선조 임란에 호정공신의 유광의 후예로써 이 지방에 세거한 명문이다. 이들이 거의에 뜻을 두기는 고종 32년(1895년) 을미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동종 의암 유인석 조선의병대장이 반포한 격문에 감동하여 춘천 제천 전투에 유중화가 참전하고 1907년(광무9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해 최익현, 임병찬 의병과 합세하고 각처에서 봉기하는 의병과 같이 구국의 일선에서 신명을 받칠 것을 결의하고 인경거주. 유지명, 송태식(조카사위), 유장렬 등과 결의하여 친족8인과 생질 이유종, 이태종 등 더불어 순종 원년 정미 가을에 의병단을 조직하 여 의병에 호응한 군세는 백육십여명에 달하였다. 한때는 이규홍 의병단과 합세하기도 하고 또 각지의 의병단과 연합 전선을 펴기도하였지만 주체는 유중화 등 9의사를 중심으로 하는 일대의 의병단이 조직되었다. 이들이 비봉면 소농리 불당동에 무기 제작소를 두고 창검과 화약을 제조하고 화승총을 사냥총으로 개조 보급하고 그 세는 용담, 진안, 전산, 금산, 연산, 여산, 금마, 익산 춘포, 봉동, 삼례, 고산에 이르기까지 활동을 넓혀 1907년 2월 금마산성에 매복하였다가 금마 헌병대를 급습하여 전멸시키고 1907 년 11월 15일 고산군 가금리(현 화산면 화월리)에서 일군과 격전하여 일군 29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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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4월 10일 연산 자촌에서 일군 2명 사살 1908년 9월 3일 고산에서 십여명 사살 1908년 10월 은진 왕성골에서 일군과 크게 접전하여 승리하였다. 한편 자체 비행자를 숙청하고 친일파 일진회를 물리치고 군자금을 자체조달과 부호들의 의연금으로 충당하고 간도 유인석 의병사령부 에 유장렬을 통하여 군자금을 전달하여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는 독립군 양성에 큰 공을 세웠다. 9의사의 의병 활동은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4년 동안 실전이 계 속 되었으며 국치이후 의병 활동이 지속된 때에도 그들은 행적을 숨겨가면서 항일지하 운동을 계속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이 사실을 탐지한 일제는 잠제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경술 10월 총책을 맡 은 유중화를 임피에서 체포하고 국치후 6년 8의사 참모장 생질 2명 등 11명을 일시에 체포하였다. 이때의 구형 죄목은 살인 강도범이 었다. 앞서 전투와 부호들의 의연금 등은 항일 운동자의 강도 행위 이며 내란죄에 해당하되 경술 합병조약에 따른 사면령이 적용됨을 판시하였다. 그러나 간교한 부일배와 결탁하여 터무니없는 또다른 살인 강도 행위를 날조하여 혐의를 씌웠다. 앞서 금마 헌병대에 피체된 유중화(총책)는 무서운 고문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저들의 비행을 질책하고 혀를 깨물어 취조 헌병에게 뱉으니 즉석에서 총살당하는 영웅적인 순국을 하였다. 나머지 8의사, 생질2, 참모1 등은 최저 10년에서 15년의 형을 받아 복역하였다. 유현석은 탈옥하여 변성명하고 전국을 방랑하고 그 외 의사들은 출옥 후 형독으로 수년을 넘기지 못하고 벌세하였다. 9의사 대부분 은 가파망신 절손까지 되는 참상에 이르렀다. 유태석은 옥중 순절하 고 유중화 생질 이유종도 순절하였다. 이태종은 출옥 귀가하였으나 돌아갈 터전도 없이 멸망한 것을 보고 비봉 일제분제소에 가서 일본 놈들이 조선 백성을 다 죽인다 절규하며 할복 자결하였다. 아.. 이 의사들의 장함이여 이들은 신분도 지위도 명예도 공훈도 불 원 하였다. 오직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위국 탄성의 세훈을 이행할 뿐이었다. 여기 고홍유씨 일문9의사의 출현은 임란시 고유봉 일문 에서 9익사가 출현함과 같다. 일문의 자랑이며 이 고장이 대한민국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청사에 빛나는 의거요 민족도의 사표며 호 국의 성령이다. 이들이 십수년간 투쟁을 계속하는 동안 동참한 이름 없는 의병들의 공을 치하드리며 의병 활동에 관계되는 비밀문서. 행장, 무기는 일제 36년 동안 모두 효실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장 거는 이 지방사람들에게 등불처럼 비치고있다. 이에 지방 고노들의 증언을 듣고 9의사의 관련된 독립투사들의 행 책을 더듬어 이를 엮어 안내판에 붙여 길이 공적을 기념하고자 한다. 유인석 의병 총사령관, 일문구의사 유관순은 고홍유씨 15세 유탱의 같은 자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