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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21 여기서 ‘외홍내백한 가면 공산당원들’은 자유시 참 변의 피해자들을 가리킨다. ‘내부의 적’인 ‘가짜 공산 당원’들을 응징한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규정 하는 문서다. 이 표현대로라면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철 규 의원은 이 문장을 문제삼아 “(홍범도는) 속까지 붉 은 공산당원”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반교수는 이 문건의 작성과 배포 과정을 최근 파 악한 자료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해명해 주었다. “1921년 11월 초까지 자유시참변을 주도한 이르 쿠츠크파는 ‘(상해파) 대한의용군 진압’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잇달아 발표하는데, 이들 문건에 의병대 영수로 홍범도, 최진동, 허재욱(허근), 안무, 이청천의 이름이 나오지요. 이에 따르면 홍범도를 비롯한 간도 독립군 대장들이 자신과 함께한 부대가 피해를 입은 것이 정당하다고 옹호하고, 해당 부대 를 공격하는 문건에 이름을 올린 것입니다. 이는 매 우 이상한 일이죠. 이에 관한 후속 연구가 진행됐고, 그 결과가 하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료의 내용을 소개하며 자세히 설명했다. “우선 1921년 10월, 허근 등이 코민테른에 제출 한 「자유시 참변에 대한 보고서」에는 ‘귀 의회정부가 총 사령관을 보내 풍파를 야기하려 자유시에서 한국군 대를 포위·공격했다’며 참변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습니다. 같은 해 12월 14 일 자로 홍범도 · 최진동 · 허근 · 이청천 등 간도 독립군 장교 27명이 상해파의 핵심 인물인 김동한에게 참변 관련 협상에 대한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상해파는 자유시참변의 피해자였죠. 간도 독립군 지도자들이 피해측 인사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한 것이 매우 중 요합니다” “끝으로 1922년 2월,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일 명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했던 홍범도, 최진동이 김 동한과 공동명의로 「조선유격운동에 대한 보고서」 를 제출하는데 여기에 ‘이렇게 부끄러운 성명서에 서 명할 수 없었으며, 그들(이르쿠츠크파)이 최후통첩 을 했지만 서명을 거부했다’면서 ‘동의 없이 임의로 (우리) 이름을 넣었다’고 폭로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 반교수가 2018년 발굴하여 천안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원동민족 혁명단체대표회 개막식 영상’에 나오는 홍범도(왼쪽) · 최진동(독 립기념관 제공). 이 영상은 홍범도 · 최진동 등 독립운동가들의 생 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영상이다. 2021년 8월 17일 독립기념관에서 반교수가 1922년 모스크바 에 서 열린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영상물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 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