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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0여 명 조선인 학살됐지만 아직까지 진상규명 안돼 한 · 일 양국 정부 진상규명 앞장서야 학계 · 교육계도 연구 · 교육 심화, 시민단체 연계 등 필요 1923년 일본 관동(關東, 간토)대지진 때 도쿄에서의 조선인 학살은 지진 첫날인 9월 1일부터 발 생했다. 이 무렵 조선인의 생명은 군인과 경찰, 자경단의 제멋대로의 판단에 맡겨졌다. 관동대지진  발생 직후 조선총독부는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이 전개될 것을 경계하는 한편, 민심 파악을 이유로  ‘사찰’을 강화했다. 또 조선인 학살 소식의 전파를 막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고 민심의 회유를 꾀하 기도 했다. 상하이 『독립신문』은 1923년 9월 4일자 「호외」로 지진 관련 소식을 최초 보도했다.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9월 10일 일본 정부에 항의문을 발송하는 등 기민하게 대응했다. 『독립신문』 보도 기 사에 실린 ‘6,661명’ 조선인 피학살자 수는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이다. 대진재 와중에 일본 군대 와 경찰,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들 학살 책임을 모면하려는 일본 정부의 공작으로 ‘박열 대역사건’ 이 꾸며지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한국 정부는 이 사건에 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 답변과 사과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국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에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네 주제로 살펴보기로 한다.           Theme 1. 관동대지진과 조선총독부 · 성주현 Theme 2. 관동대지진 때 도쿄에서의 조선인학살 · 김인덕 Theme 3.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동대학살 · 김강산  Theme 4. 간토(關東) 조선인대학살과 ‘박열사건’ · 김명섭   관동대지진 100주년 특집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