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page

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05 ▒ 대통령장│최석순(崔碩淳)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경비선을 타고 압록강 일대 국경지대를 순시하고 있었다. 제2중대 1소 대 소속의 장창헌(張昌憲) 이하 대원 8명은 사이토 일행이 탄 배에 총격을 가했고 뜻밖의 기습공격을 받은 배는 제 대로 응사도 하지 못한 채 전속력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동생 최석준과 함께 고향에서 3.1 운동 주도 상세한 기록이 없어 선생의 유년기, 청년기의 행적을 알 수 없다. 함께 독립항쟁에 앞장섰던 동생 최석준이 1891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보다 몇 년 앞서 삭주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 정한다. 일제의 자료에는 1892년 6월 17일 평안북도 삭주군에서 출생한 것으로 나오지만, 출생지 외 에는 신빙성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동생 최석준은 1919년 3.1 운동 때 고향인 삭주군의 만세 항쟁에서 크게 활약한 인물이었다. 따라 서 선생도 고향의 3.1 운동에 앞장섰을 것으로 보인다. 삭주의 만세 운동은 3월 5일 3,000여 명의 시 위 군중들이 헌병대 청사까지 몰려가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했다. 일본 헌병대의 발포로 4 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20여 명이 체포됐다. 하지만 며칠 간격으로 다시 만세 시위운동을 벌였다. 일제 당국은 이웃의 창성과 선천 수비대 병력까지 동원해 시위 군중을 탄압했다. 일제에 대한 반발로 시위는 점점 커져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고 일본 시설에 대한 공격도 있었다. 남만주에서 무장투쟁 주도 조선 총독에게 총격을 가하다 삭주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후 만주에서 독립군을 지휘해 사이토 마 코토 총독 저격 작전 등 항일 무장 투쟁을 수행했다. ● 출생 미상 ● 1919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3.1 운동 참여 ● 1920년 대한독립단 집서지단장으로 활약 ● 1922년 대한통의부 의용군 제2중대장으로 활동 ● 1924년 참의부 참의장 겸 제2중대장으로 무장투쟁 ● 1925년 2월 25일 고마령전투에서 전사, 순국 ●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