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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 대통령장│채상덕(蔡相悳) 고구려의 수도가 위치한 길림성은 독립군이 활발하게 활동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채상덕 선생은 후사를 기르 며 독립을 준비했다. 1895년 의병에 참가한 선생은 1920년대가 되자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선에서 물러나 이 수 흥, 최석순 등의 독립투사를 양성했다. 을미의병에서부터 시작된 항일 의지 채상덕 선생은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다는 것 이외에 성장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유학을 공부하던 그는 1895년 명성황후 살해와 이후 내려진 단발령으로 충북 제천에서 시작해 전국 적으로 항쟁을 시작했던 을미의병 때 의병으로 참여했다. 을미의병은 고종이 내린 해산령으로 상당수가 해체됐는데 채상덕 선생도 그때 고향으로 돌아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기록에만 없을 뿐이지 계속 항일항쟁을 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되자 남만주로 건너가 독립항쟁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 후 채상덕 선생은 본격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1905년부터 철도 시설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은 군벌과 연합해 만주에서의 세력을 산해관 안쪽인 요동까지 진출 해 본격적인 만주 지배를 시작했다. 선생은 일본군의 만주 출병을 보고는 분산된 독립군을 통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독립군 은 만주 각지에 흩어져 활동했으며 일본과 대항한다는 것 이외에는 사상도 이념도 체계도 전혀 다른 각자의 조직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독립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후대 위해 많은 인재를 양성한 독립투사의 정신적 아버지 만주지역 독립단체 통합 조직인 대한통군부 총장, 대한 통의부 부총장으로 활동하며 독립항쟁을 주도하고 독립투사를 양성했다. ● 출생 미상 ● 1895년 을미의병 참여 ● 1922년 대한통군부 초대 총장, 대한통의부 초대 부총장 ● 1925년 일본경찰의 기습으로 자결, 순국 ●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