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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경루(讚慶樓)
찬경루는 세종 10년(1428)에 운봉관과 함께 청송 군수였던 하담이 2층 16칸으로 세운 누각이다. 조선시대 때 누각은 객사와 이웃하여 있으면서, 사신들을 위한 연히나 지방유생들을 위한 백일장 장소로 사용되었다. 숙종 14년*1688)에 손보고 고쳤으며, 화재로 불타서 없어진 것을 정조 16년(1792)에 다시 일으켜 세우는 등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2008년에 건물을 다시 고치고 단청도 새롭게 하였다.
경상도 관찰사 홍여방이 찬경루에 대해 쓴 문서에는 "지금까지 왕후와 왕족이 끊이지 않는 복을 누리고 있으니 이 누에 돌라 그 묘를 바로보면 저절로 우러러 찬미하게 되어 찬경이라 이름 지었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찬경루'라는 이름은, 청송심씨 가문에서 소헌황후가 탄생하였고 이 누각이 청송심씨 시조 묘소를 바라보고 있음에 따라, '우러러 찬미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건물 내 사분합문 위쪽에는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쓴 송백강릉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으나 화재로 불타서 없어졌다. 지금은 정조 16년(1792)에 부사 한광근의 아들 한철유가 쓴 송백강릉일는 액자가 걸려있다. 건물안에 조선시대 명성을 떨치던 서거정, 김종직, 송시열, 홍성민 등이 남긴 시문이 보관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