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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 대통령장 │김동삼(金東三)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 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 김동삼 선생 옥중 유 언 보수 유림의 고장 안동에서 신식 교육을 시작하다 김동삼 선생은 1878년 6월 23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장남인 그의 본명은 긍식이고 종식 이 라는 이름도 사용했다. 김동삼이라는 이름은 그가 만주로 망명한 뒤에 동북 삼성 지명을 딴 이름 이다. 그가 태어난 내앞마을은 5백 년을 이어오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한 곳이고, 일제 침략기에는 이 마을에서만 44명이 넘는 독립유공자가 배출됐다. 김동삼 선생이 본격적으로 독립항쟁에 뛰어든 시기는 만 29세가 되던 1907년이었다. 어린 나이에 의병항쟁을 목격했고 1900년대에 들어 서울에 있으며 급격한 변화를 목격했다. 유인식, 김후병 선 조국 독립 위해 온 몸 바친 독립군의 거성 1911년 서간도에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세워 독립군 기지를 구축, 독립 군을 양성하고 신흥무관학교, 서로군정서, 대한통의부를 조직하여 항일 무 장투쟁을 펼쳤다. 상해 국민대표회의 의장, 정의부 대표로 삼부통합회의 등을 주도하며 독립항쟁세력 좌우 통합의 화신이었다. ● 1878년 6월 23일 경상북도 안동 출생 ● 1907년 협동학교 설립 계몽운동 ● 1911년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설립 독립군 양성 ● 1914년 백서농장장주(독립군 군영지) ● 1919년 신흥무관학교, 서로군정서 조직 항일 무장투쟁, 무오독립선언 ● 1923년 대한통의부 조직, 국민대표회의 의장 (상해 임정) ● 1924년 정의부 조직 (참모장), 군사위원장 ● 1927년 유일당 운동, 농민호조사 설립 ● 1928년 정의부 대표로 3부 통합운동 ● 1937년 4월 13일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핵심공적 주요약력